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토종 한국기자의 뉴욕타임스 칼럼 게재기=95번째 브런치

by Sujiney

"이것도 칼럼이라고 썼습니까? 형편없네요."
약 10년 전. 내 이름으로 기명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편집국에서 당시 고문 역할을 하시던 모 언론학 교수님이 내게 하신 말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의견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어서. 내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그분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은 자명했다.

여성 언론인의 대표 롤모델, 바버라 월터스(1929~2022)가 후배들에게 남긴 말을 떠올렸다.
"작은 싸움에 힘 빼지 말고, 큰 싸움을 할 것. 미리 준비를 하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을 고를 것(Fight the big fights. Don't fight the little fight. Do your homework, choose your battles)."

바버라 언니의 my 오비추어리 기사 캡쳐. RIP.


기자라는 직(職)과 업(業)이 내게 심어준 여러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맷집이다. 기자 업의 특성상, 선배 및 데스크(부장 등, 내 기사를 수정하고 취재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는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한 편. 혼나는 일에 익숙해지는 건, 슬픈 일만은 아니다. 혼을 내는 사람이 애정을 갖고 나의 성장을 바라는 진심이 있는 경우엔 외려 축복일 수 있다.

악플은 또 어떤가. 기사를 읽지도 않고 악플부터 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세상엔 많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제론 멀쩡한 이들이라는 것. 그러니 악플이며 악메일에 일일이 파르르 떨지 말 것. 어떤 선배는 말했다. "비가 올 때는, 그 비를 멈출 수 없다면 힘껏 맞아라." 자존심이 상하는 걸 견디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키울 수 있는 능력. 물론 이렇게 말하기까진 꽤 여러 번의 정신과 상담, 꽤 많은 불면의 밤을 지났다.

전제조건은 있다. 맷집을 키우고 비를 맞으면서도, 견디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비를 맞으며 마음의 키를 키우고, 성장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계속하는 것. Keep going. 계속 쓰는 거였다.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건 의외로 작은 루틴이다. 세탁기, 청소기를 돌리고 분리수거를 하는 것 같은.

NHK 일드 '하나코와 앤' 중. [Copyright holder NHK]


얘기가 거창해졌다. 다시, 칼럼 이야기. 어쨌든 나는 계속 썼고, 감사하게도 쓸 기회를 계속 받았다. 첫 직장인 영어신문 코리아 중앙데일리에서 칼럼을 10년 가까이 썼고, 한국어 신문으로 넘어와서 지금까지는 5년 넘게 써오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쓰고 있다. 매번 일필휘지... 이기를 바라지만 언감생심. 그럼에도, 마감은 힘이 세다. 이번엔 정말 쓸 게 없다고, 쓸 수 없다고, 패닉 하다가도 결국 뭐든 써내게 된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니까.

그러다 올해 3월, 내 이메일을 열어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뉴욕타임스(NYT)의 오피니언면(OP-ED) 담당자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내 책 'North Korean Women in Power'를 봤는데, 북한 여성과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대해 칼럼을 써보지 않겠느냐, 는 내용.
그전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 믿지 않았다. 이 사회의 시시포스 노예들이 계속 돌덩이를 굴리도록 하기 위한 신기루 같은 말이라고 믿었더랬지. 그러나 이 메일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어떤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구나.


감사한 K선배께서 찍어서 보내주신, 뉴욕타임스 6월2일자에 실린 나의 게스트 칼럼. 이 영광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돌려야하나.


과정은 지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역시, 뉴욕타임스였다. 우선 담당자와 커피를 한 잔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일종의 면접이었다. 스마트하고 유머 감각도 있으며 적극적인 Tamsyn이란 이름의 그 에디터는 내게 그 책을 쓴 계기와, 북한에 대한 생각, 김정은 정권에 대한 취재 경험 등을 폭넓게 물어봤다.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커피 타임, 아니, 면접은 2시간이 걸렸다.

뉴욕타임스 디지털판 캡쳐.


하긴. 뉴욕타임스 입장에서도 모험이었을 터다. 영어신문에서 기자를 10년 가까이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100% 토종 한국인이다. 해외를 나가본 것도 입사 후 첫여름휴가가 처음. 유럽 패키지여행이었다. 빼어난 칼럼니스트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나의 '한국 토종'이라는 레테르는 그들 입장에선 장점이라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나를 믿어줬다. 고맙다.


면접 약 이틀 후, Tamsyn은 "윗선에 보고를 했고, 다들 기대가 크다"며 "잘해보자"는 요지의 메일을 보내왔다. 합격한 셈. 나도 회사에 보고를 했고,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케이를 받았다.

때는 춘삼월. 당시만 해도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쓸 수 있겠지, 생각했다. 틀렸다. 실제 칼럼이 게재된 건 디지털 버전은 5월 30일, 지면은 6월 2일이었다. 그 사이의 약 석 달간, Tamsyn과 내가 주고받은 메일은 약 30 통이다. 오간 과정을 뉴욕타임스 측의 요청 사항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우선, 네가 쓰고 싶은 포인트들을 간략히 정리해서 보내줘 봐.
2. 그 포인트들 중에서 뉴욕타임스의 글로벌하면서도 스마트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은 이런 것들인데,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어떤 논리 전개가 가능할까?
3. 이 논리는 왜 그런 거지?
4. 용어 정리를 해보자. 이 용어는 네가 만든 거니? 통용되는 거니? 구체적 사례를 들어줄래?
5. 내가 Juche Ideology(주체사상)과 the Paektu bloodline(백두혈통)에 대해 논문을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던데, 너는 동의하니? 그렇다면 함께 녹이면 어떨까?
6. 좋아,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먼저 the first draft를 써볼 수 있을까? 언제까지 가능해? 1000 단어(글자크기 10으로 약 A4 3.5장) 써서 보내줘.
7. 리뷰해 봤는데 이런 점은 왜 이렇게 쓴 거지? 그 근거는 뭐야? 이런이런 부분은 추가 전문가 코멘트를 받아줘. 적어도 3명 이상이어야 해.
8. 리뷰 반영 잘했어. 이제 OP-ED 회의에 올려볼게. 그 사이에 북한 움직임 계속 체크해 줘.
9. 회의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어. 꽤 호평이야. 축하해. 이제 본격 원고를 써보자.
10. 내가 너의 원고를 이렇게 수정했고, 질문은 구글 문서를 통해 했으니, 보고 최대한 빨리 의견 및 답변 보내줘.
11. 오케이, 마지막으로 팩트체크 부탁해.
12. 자, 이제 최종본 보고 다시 오탈자 및 이름, 인용문 등등 수정해 줘.
13. 이제 원고는 다 됐어. 수고했어. 이제 우리 행정팀에서 계약서가 갈 거야. 잘 확인해 줘.
14. 게재일은 5월 30일이야, 수고했어. 좋은 글 고마워


교보문고 'Books on Korea'의 내 책.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Tamsyn의 질문은 놀라웠다. 의표를 찌르는 질문도 다수였지만, 무엇보다 질문을 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게 보였다. 주체사상부터 백두혈통까지, 영문으로 나온 논문을 다 찾아서 읽고, 내게 그 링크를 보내주며 이 논문이 신뢰도가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칼럼을 쓰는 과정 그 자체가 나를 성장시켜 줬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칼럼 게재 후, 이번엔 CNN에서 연락이 왔다. 코멘트를 해달라는 요청. 새벽 5시였지만 감사할 따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이것도 칼럼이라고 썼느냐"는 비판에 풀이 죽어 포기했다면? 좀 더 잘 쓰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고 그래도 뭐라도 계속해왔기에 다행이라는 생각. 책도 그랬다. 사실 토종 한국인이 영어로 책을 쓴다는 건 상당한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두를 감히, 냈다. 엄청난 성과물을 내서 세상을 바꿔보겠어, 이런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냥, 써보고 싶었고, 여러 번 문을 두드렸다.

토종 한국인이면서 북한 출신 가족의 일원으로 나고 자라 냉면이 소울푸드인 내가, 영어로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결국 북한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취재 현장에서 느꼈던 바를 꼭 쓰고 싶다는 마음에 충실했던 결과. 그 책을 우연한 기회에 본 Tamsyn 덕에 NYT 전면 칼럼이라는 꿈도 이룰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기회들을 내가 애타게 바라고 구할 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사실, 엎친데 덮친 격의 상황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내가 앙망했던 외교안보 현장에서 빠지는 일도 생겼고, 여기에 적을 수 없는 여러 에피소드 etc. 낙담했지만, 어쩌겠어. Keep going.

대신, 어깨에 힘을 뺐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1) 조금씩 2) 매일 3) 지치지 않고 해 나가자,라는 마음으로 칼럼과 책을 썼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어느 순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북한 취재 현장에선 빠졌지만 북한 관련 글을 계속 쓰고 싶고, 토종 한국인이라는 점을 살려 세계 독자들을 향하고 싶다는 마음에 썼던 영어 책, 'North Korean Women in Power'라는 책 덕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발레 클래스에서 들었던 이 말.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이 "뭐든 시도해 봐요, 엄두를 내봐야 해요"라며 해주신 명언. 결국 인생에서도 진리다.

어디에든 출구는 있다. 당장은 안 보이더라도. 사진은 사랑하는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라이카 시네마. By Sujiney


덧붙여 생각한다.


이왕 하는 말, 친절하게 하자. "이것도 칼럼이라고 썼느냐"는 말 대신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느냐" 뭐 이런 식으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네가 만나는 모든 이들은 네가 알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싸움을 하고 있어. 친절하도록해. 언제나(Everyone is fighting a battle you know nothing about. Be Kind. Always)." 나부터 그리 해야겠다.

그만두고 싶고, 다 귀찮고, 날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야속한 수많은 상처받은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기를. 뭐든 해야, 뭐든 일어난다. 나도 계속, keep going 할 작정이다. 묵묵히 but 즐겁게.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