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난 건 10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날 아침. 8시도 안 됐지만 유수 신문 및 방송 기자들이 줄을 서서 그와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나만 스포츠 문외한, 모두가 베테랑 스포츠 기자들. 영어신문에서 한국어 신문으로 넘어온 뒤 첫 유명 외국인 인터뷰이기도 했다. 여름인데 벌벌 떨었던 건, 호텔 에어컨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
월드컵 신화의 주인공을 내가 인터뷰하는 게 맞을까. 고민도 했다. 팔자에 없는 축구 공부 때문에 야근도 밥먹듯. 그럼에도 결론은 하나였다. 갑자기 축구 박사가 될 순 없다. 다르게 접근하자.
전략을 새로 짰다. 인터뷰에 웬 전략? 인터뷰야말로 전략이다. 한정된 시간, 주어진 환경에서의 대화를 통해 상대의 속내를 파헤치고, 그 뒤엔 한정된 분량으로 기사를 풀어내야 하니까. 인터뷰는 그래서 기술인 동시에 예술이다.
내 전략은 '축구인 히딩크'를 넘어 '인간 히딩크'를 물어보자는 거였다.
실패하면 어쩌나 긴장도 많이 했지만, 어쩌랴.
저스트 두 잇.
지금은 정치적 의미가 덧입혀져 있지만, '어퍼컷' 사진들은 여전히 짜릿하다. [네이버 이미지 캡처]
곧 내 차례. 히딩크 감독이 묵는 호텔의 1층 비즈니스센터의 인터뷰 룸 주변의 공기가 뾰족했다. 홍보 담당자가 귀띔을 했다. “오늘 감독님 기분이 좋지 않으시네요. 더 짧아질 수도 있겠어요.” 엎친데 덮친 격일세.
돌이켜보면 히딩크 감독 인터뷰는 여러 의미에서 큰 도전이었다. 영어신문에서 한국어 종합일간지로 넘어온 지 1년도 안 됐던 때였다. 토종이지만 한국어 기사 쓰는 게 더 어려웠다. 영어신문에서 다양한 인터뷰 기사를 다뤘지만 ‘human profile’, 즉 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의 휴먼 스토리를 쓰는 건 내가 이미 잘 알고 있거나,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뒤였다.
히딩크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은 20분. 도망칠 수는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음. 루비콘 강을 건너 인터뷰룸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자 말대로 히딩크 감독 표정엔 짜증이 역력했다. 하긴 나라도 아침 7시 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인터뷰를 5개 이상 해야 한다면, 유쾌하지는 않을 듯. 나와 사진기자가 들어서자 히딩크 감독은 살짝 한숨을 쉬더니 호텔 직원을 불러 “카푸치노 한 잔 더”라고 말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피곤이 묻어났다. 하지만 기가 죽을 수는 없지. 때론 연기도 필요한 법.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명랑한 목소리로 아마도 꽤나 어색하게 첫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 카푸치노 좋아하시나 봐요?”
준비해 간 첫 질문은 달랐지만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현장 분위기다. 현장의 흐름과 상관없이 준비해 간 질문지를 그대로 읊다 보면 그 인터뷰는 열이면 열 모두 실패한다. 인터뷰를 대화와 소통이 아닌 마이웨이 독백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 좋은 결과만 있지는 않은 법.
이날이 그랬다.
히딩크 감독은 내 첫 질문에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는 의미다.
뭐 어때. 상처받을 필욘 없다. 기사 제목이 ‘단독: 히딩크 감독! 카푸치노를 좋아하다’가 될 리도 없지 않은가. 우선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엔 성공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그가 적어도 내 질문에 (말로는 아니더라도) 몸으로라도 반응을 했으니까.
불쑥, 테일러커피. 지난봄. 카푸치노도 맛있다. by SJ
20분 중 벌써 3분이 흘렀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최고의 인터뷰 사진을 뽑아내기로 유명한 박 선배는 벌써 솜씨 좋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질문지를 참고는 하지만 인터뷰이의 눈을 보고 질문을 던지는 게 기본이다.
나의 전략을 다시 떠올렸다. 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저는 '거스 히딩크'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게 내 전략. 입을 뗐다.
“저, 예전 자료들을 읽어보니 소외 아동을 도우신 적이 있던데요. 그때 얘기를 먼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지루한 듯 카푸치노 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시선이 날 향하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은 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거 어디에서 알았어요?”
내 답.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감독님 30대 즈음에 네덜란드 언론과 인터뷰하신 내용을 찾아봤거든요.”
히딩크의 환한 미소. 앗싸! 사진기자 선배의 손가락은 바삐 셔터를 누른다. 그래서 나온 컷이 아래 사진이다.
멋진 미소를 포착해주신 박종근 선배께 찬사를. Copyright 중앙일보
안도했다. 호랑이 선생님 히딩크 감독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였으니.
히딩크 감독은 답을 이어갔다. 과거 프로 선수로 뛰었을 때, 훈련이 없는 시간에 쉬는 대신 특수아동들이 모인 학교에서 체육 지도를 한 적이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스포츠로 일깨우는 데 관심이 많아요.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터득한 그 아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기에서 더 파고들고 싶었다.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은 다양한데 왜 특수학교를 선택했는지, 혹시 소외 아동과 관련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는 것이지 등등.
그러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히딩크 감독의 전기(傳記) 작가로서 앉아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내게도, 히딩크 감독에게도, 일론 머스크에게도, 이재용 회장에게도 공평하다. 남은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고, 밖에는 기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인터뷰에선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내가 알고 싶은 히딩크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히딩크가 더 중요하다. 독자들의 기본적 관심사를 저버리는 것은 인터뷰어로선 실격.
그래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던 한국 축구 대표팀에 관련한 이야기. 히딩크 감독은 과연 의리의 사나이였다. 허정무 당시 감독과, 한국 축구팀을 옹호했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한국 축구팬들에겐 오히려 따끔한 한 마디를 했다. “축구엔 항상 기복이 있다”며 “어려울 때 지지를 보내주고 응원을 해주는 팬이 진짜 팬”이라는 말을 하면서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껄끄럽게 생각하지만 독자들은 알고 싶어 하는 속내도 파헤친다. 히딩크 감독이 아파할 질문들도 안 할 수 없었다. 이런 질문에도 물론 기술은 필수. 히딩크 감독에겐 살짝 돌려서 물었다. “일부러 약체 팀들만 골라서 감독으로 부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히딩크 감독도 이런 비판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터.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이 질문을 안 하고 넘어간다? 영어 표현대로 ‘방 안의 코끼리(an elephant in the room)’가 될 판이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는 기괴한 상황인데도, 아무도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상황.
일부 인터뷰이들은 비판적 질문에 서툴다. 화를 내거나, 인터뷰장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히딩크는 달랐다. 옅은 미소를 띠며 짧게 한 템포를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런 팀들을 고르는 게 아니고, 그런 팀들이 나를 고르는 건데?” 좌중, 박장대소.
예정된 인터뷰 시간은 이미 3분가량을 넘겼다. 홍보 담당자는 초조한 듯 인터뷰룸을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마칠 시간이다. 히딩크 감독도 나도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던 히딩크 감독의 표정은 처음 인터뷰룸에 들어섰을 때와는 180도 달랐다. 주변 분위기도 밝혀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기사의 링크.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히딩크 감독은 그날 어떤 행사에 참석해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축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나의 소외아동에 대한 관심사를 묻더라. 나에 대해 공부를 해왔다는 얘기라서 반가웠다.”
축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즉 모르는 걸 약으로 삼은 결과였다. 많은 이들의 도움도 물론, 받았다. 정영재 당시 스포츠부장처럼, 편집국의 유능한 스포츠부 선배들이 구세주가 돼줬다. 감사한 일.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진. 20년 전이라니. [네이버 '월드컵' 이미지 검색]
월드컵은 벌써 20년 전. 히딩크 인터뷰를 한 뒤에도 강산이 약 1.5번 바뀐 지금, 내 마음속에 남는 그의 말은 이거다.
“사람들이 나를 고약하고 심술궂은 노인네로 보지 않는 이상은 계속 현역으로 뛰고 싶다.”
실제로 그는 여전히 PSV 에인트호번의 기술고문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의 꿈도 이루어진 셈. 그가 2002년, 한국인의 꿈을 이루어준 것처럼.
갑자기 마시고 싶다, 카푸치노.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