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번째 브런치 by SJ 발라레 인생(19)
세상의 짐을 홀로 짊어진 듯한 비장한 표정으로
성인 취미 전문 발레 학원 리스트를
약 1년 전 어느 작은 카페에 앉아 작성하던 사람을 보셨다면,
나일 가능성 99.999%.
발레 학원을 그만둘 결심을 한 직후였다. 그게 무슨 대수냐, 라는 질문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내겐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심이었으니. 수년 간 주 5일 이상을 거의 매일 집처럼 다녔던 곳에 발길을 끊겠다는, 그야말로 내겐 ‘헤어질 결심’.
인류의 발전과는 관계가 0%인 일이었지만 내겐 무엇보다 중차대한 문제였다.
다녔던 곳의 원장님의 “여기 아닌 다른 발레학원에선 멋 부리는 법만 가르치지, 몸이 다 비뚤어지고 다친다”는 말씀은 내게 수년 간 복음이었다. 철썩 같이 믿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건 가스라이팅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몸이 비뚤어지고 아프게 되더라도 감내하고 발레를 계속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찾기 위해 회사에 휴가까지 냈다.
맘먹고 찾아보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서울엔 성인 취미 전문 발레학원이 넘쳐났다.
자신의 게으름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우선 직주 근접이 아니라 발(레)주(거) 근접 지역의 학원 리스트를 만들고, 각 블로그 및 홈페이지, SNS를 찾아 특성을 파악했다. 그렇게 1주일 동안 다녀본 학원은 12곳.
처음 갔던 학원에서 그간 내가 배웠던 발레는 발레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동작을 할 수 있는 게 없어 창피 하기가 그지없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유레카의 순간. 그렇게 찾아왔다, 나의 발레 광복절. 일제의 압제에서 빛(光)을 되찾은(復) 그날은 아니지만, 나만의 광복(光復)절이다.
용기를 쥐어짜 갔던 첫 수업은 호아나발레 박현경 선생님의 클래스. 그냥 클래스도 아니고 무려 작 to the 품to the 반에 도전장을 냈던 건, 무식해서였다. 무식은 용기를 부르니까.
당시 나는 그랑플리에라는 발레의 기본 동작도 모르던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발레 학원엘 다닌 게 얼만데”부터 “내가 그 학원에선 왕따 당하기 전엔 에이스였다고”라는 무식함.
아직도 기억한다. 2번 그랑플리에를 하는데 진도7 정도 지진 강도로 흔들리던 호아나 선생님의 동공을.
옆 바(barre)에 선 누가 딱 봐도 전공생 포스 뿜뿜인(데 아니었던! 존경하는 발메) love5252 님을 곁눈질해가며 따라 하는데, 완벽히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100m 달리기 하듯 내 곁으로 오셔서 무려 섬섬옥수로 직접 내 발을 잡아 주셨던 순간.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스칠 장면 중 하나일 거다.
당시 배웠던 작품은 ‘지젤’ 1막 솔로 배리에이션.
발레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품 중 하나가 ‘지젤’이고,
그 ‘지젤’의 1막 중 가장 대표적인 주역의 솔로 무대.
흥, 내가 몇 년을 배웠는데, 창작 작품이긴 했지만 콩쿨 나가서 상도 받았다구. 잘은 못해도 따라는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약 365일이 지난 지금도 심히, 부끄럽다.
허우적댄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발레는커녕 감히 춤이라 부를 수 없는 의미 없는 몸짓. “괜찮아요, 계속하면 돼요”라는 호아나 선생님의 격려를 들으며 또 다른 결심을 했다.
앞으로 적어도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제대로 된 발레를 해보자.
쉽진 않았다. 전생에 나라를 (아마도 여러 번) 팔아먹은 게 분명한 탓에, 내 밥벌이의 또 다른 이름은 불확실성.
예전 발레학원에서도, 타이즈를 신다가 부장 전화를 받고 바로 짐 챙겨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김정남 암살사건 취재 등등을 간 적이 여러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은 성문종합영어에나 나오는 말이다.
뜻이 있다고 다 길이 있진 않다.
길은 많은 경우, 없다. 산을 깎고 돌을 골라 없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상당수 유명 학원들이 점심시간 클래스와 늦은 저녁시간 클래스를 열고 있었다. 취재원과 점심 약속 역시 중요한 업무의 일환이지만, 과감히 1주일에 2번은 온전히 발레를 위해 뺐다. 나머지 5일 중 3일은 저녁에, 나머지는 주말로 채웠다. 그렇게 꼭 1년.
내 체중은 7kg 줄었고, 근육량은 4kg 늘었다. 발레 광복절 이후, 매일 아침 가정용이긴 해도 인바디를 잰 결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 성형했지?”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틀렸다. 적어도 발레에선. 어떤 일을 1만 시간 한다고 해서 전문가 수준의 레벨을 습득할 수 있다고 글래드웰은 꽤나 과학적인 정량적 분석을 해냈지만, 적어도 발레만큼은 아니다. 내가 산 증인. 발레 광복절 이전의 나는 절대적 시간은 수천(구체적인 수치는 부끄러워서 비밀)시간이었지만, 그대로 1만 시간을 채웠다고 해도 나는 제대로 된 발레를 할 수 없을 게 100%. 제대로 된 발레를 1만 시간 해도, 흉내를 겨우 낼 수 있을 정도다.
지난 1년, 발레를 가지 않은 날은 딱 이틀이다. 하루는 존경하는 선배가 황망히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돌아가셨을 때. 또 다른 하루는 내 생일, 회사 선배들이 학원 가는 길을 막으시고 맛난 거 사주신다고 했을 때. 그리고 난 그다음 날, 연강을 뛰었다.
그렇다고 이제 달인이 됐느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제 겨우 못 볼 꼴을 면한 정도일 뿐.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
먼 길이라도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이 조금씩이나마 보이고,
그 길을 안내해주는 최고의 나침반이자 지도가 돼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나의 못 볼 꼴을 견뎌내 주시고 북돋워 주신 호아나 박현경 선생님,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과 여름 선생님, 오연주 선생님, BB발레의 강다영 선생님. 최근엔 발레조아의 정혜연 선생님, 정훈일 선생님, 최시몬 선생님까지.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앞으로도 저 많이 허우적거리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즐겁게 꾸준히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어요. 지난 1년 간 그랬듯.
최근 인터뷰했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 님이 했던 말.
“하루 만에 늘 수 없어요. 그냥 매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석 달 후 정도, 1년 후 정도엔 늘어 있어요.”
또 최근 인터뷰했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 님의 말.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죠.”
그 말을 들으며 떠올렸던,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말.
“제 라이벌은 어제의 저입니다.”
Bravi.
얄궂게도, 혹은 호아나 선생님의 빅픽처인지 몰라도, 꼭 1년이 되던 지난달 작품반에서 다시 ‘지젤’ 1막 솔로를 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 달인 이번 달, 강다영 선생님의 BB발레에서도 ‘지젤’을 골라 주셨다.
솔직히 1년을 달려오며 살짝 지친 때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점프를 이렇게까지 못 뛰다니 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자 편견이다.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날아오르기 위해 1만 시간이 아니라 10만 시간을 연습했다. 그깟 1년 매일 90분씩 했다고 지칠 자격 따윈,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면 되는 거다.
1년 후 my ‘지젤’ 영상.
그러면 그렇지, 내 몸짓은 아직도 비루했다.
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선생님이 지적을 해주실 만한 ‘꺼리’들이 있었다. 너무 못해서 지적조차 할 수 없고, 선생님께서 그저 꿈과 희망의 말만 줄 수 있었던 365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래도, 성장해 있었다.
앞으로도 매일 빠지지 않고 발레를 하고 말겠어, 라고 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그럴 결심은 단단하지만, 인생이란 호락호락하지 않고 내 앞날을 내가 모르기에. 시간이라는 재화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최근 발표된 사내 인사에서, 승진이 누락된 것 역시 마음이 쓰인다. 돈을 벌어야 발레도 할 수 있는 법.
그럼에도 중요한 건 발레에 대한 진심과 중심.
발레에서 중요한 건 중심을 잡아 유지하는 밸런스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고,
내일은 내일의 플리에를 하면 된다.
꾸준히 but 즐겁게.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