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도리진 Nov 29. 2020

우리 신랑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그에게는 죄가 없다

우리 신랑이 비행기를 타지 못했던 것은 그의 탓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타.지.못.했.었.다. 라고 말을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잘, 타지 못했던 것이다. 가까운 거리는 힘들지만 탈 수는 있었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남자 성인이 되어 조금 긴장하면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학원 강사인데 아이들 시험 기간과 겹쳐 - 우리는 4월 22일에 결혼했다 - 날짜를 3일밖에 못 빼기 때문에 제주도로 간다고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신랑이 비행기를 탈 수가 없어서였다. 그에게는 제주도에 가는 것도 나를 위해 거의 목.숨.을 거는 수준이었으니까.


역시나.. 그에게는 뭔가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다.

유명한 일본 드라마 - 사실 만화가 원작 - 인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오는 치아키 센빠이(선배)와 같은 증상이었다. 내 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으리라 생각 못했는데 있.었.다.


그는 겁이 굉장히 많았고, 또한 쓸데없이 용감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배려가 넘쳤으나, 평소에 쓰는 언어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유머가 많고 머리도 나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잘 믿지 않았다. 아니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너무 심하게 자기 방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여린 영혼이 내 눈에는 보였다. 나도 같은 상태였던 까닭다.


우리는 그냥 조금씩 끌려서 정신 차려보니 결혼이란 것을 했고 - 사실 나는 결혼에 합당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믿음도 그다지 있지는 않았지만, 단 세 가지 이유로 나는 결혼을 결정했다.


첫째, 더 이상 엄마에게 '너는 뭐가 모자라서 결혼을 못하니?', 라는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심하게 말했지만 엄마의 명예를 위해 그만 이야기하겠다. 참고로 우린 24살에 만나 32에 결혼했다)

둘째, 나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깡다구 있는 남자가 내 주변에 그 밖에는 없었다. (내가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둘째와 같은 이유일 수도 있는데.. 그를 그대로 보내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그'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별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하는 것 같고, 서로 통하는 것 같고, 나를 알아주는 것 같고, 나처럼 마음으로 울고 있는 것만 같은.. 마음이 너무나 깊은 사람. 정 안 맞으면 이혼하지 뭐, 라는 정말 말도 안되게 짧.은. 생각으로 나는 결혼을 실행했다.


하지만 모두들 아는 것처럼, 이혼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특히 상대에게 특별한 결격사유 - 바람, 도박, 구타 등등 - 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에 합의해 주지 않으면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와의 이혼을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고비를 잘 넘기고 2006년 결혼 이후로 현재도 부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신랑이 나중에 아이를 원한다고 하여 조금 노력을 해보았지만, 너무 늦은 관계로 잘 되지 않아서,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점이 딱히 유감스럽지는 않지만, 외로움을 너무나 많이 타는 신랑에게는 조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와 자녀, 라는 관계에 있어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님과 좀 비슷한 입장이고 - 하루키님도 부모님들과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았고, 그 영향으로(?) 자녀를 갖지 않았다 -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느꼈던 감정을 내 아이가 나에게 갖는다면?, 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많이 두렵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고.


하여튼, 우리 신랑이 비행기를 타지 못했던 것은 신랑 탓이 아니다. 그의 마음의 상처도, 내 내면의 울고 있는 아이도 내 탓이 아닌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잘 살아왔고, 적어도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고 살고 있으니 토닥토닥, 해 주고 싶다.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멧 데이먼 주연의 '굿 윌 헌팅'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


어린 시절 학대의 기억 때문에 늘 방어적이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던 윌 헌팅은 여자 친구 스카일라의 사랑과 숀 교수의 마음을 담은 심리 치료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일어설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서로를 붙잡고 일어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누가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해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직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나는 나와 그의 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부모님들, 친구들, 어른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모두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랐.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조금만 견디면 봄이 오듯이, 지금 만약에 많이 힘드신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든 버티시라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 견디시기 힘들면, 다른 방법을 어떻게든 찾으시라고 외치고 싶다. 내가 절규해야만 남들에게 닿는 소리도 있으며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뼈를 깎듯이 배웠다. 물론 나보다 힘든 일을 겪으신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경험한 선에서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다.


배고픈 짐승이 뼈를 핥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으며 견뎌왔던 시간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떠돌던 겨울밤. 더 이상 나처럼 헤매이는 영혼이 오늘 밤에는 없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移徙)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