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도리진 Nov 09. 2021

인간에게는 대의 명분보다 '이것'이 중요할 지 모른다

이사 그래피티6의 출처는.. http://english.hongik.ac.kr/~flypaper/haruki/


원래는.. 하루키님의 ‘무라카미 아사히도’ 에 있는 글입니다

<이사 그래피티 6>

나는 절대로 일기를 쓰지 않는 인간인데, 미타카 시절에 한해서는 무슨 이유에선 가 짧은 일기를 썼다. 뭐 대단한 일기는 아니고, 뭘 먹었다든지, 무슨 영화를 봤다든지, 누구를 만났다든지, 몇 번 했다든지, 그 정도의 일밖에 씌어 있지 않지 만, 그래도 뒷날 읽어 보니 제법 재밌다.

1971년 당시를 보니, 석간이 15엔이다. 헤이본(平凡) 펀치는 80엔, 쇠고기 200그램 180엔, 하이라이트 80엔, 콜라 40엔, 대충 지금 물가의 반 정도다.

그 해 1월 3일과 5일에는 눈이 내렸다. 1월 3일에는 10센티미터나 쌓였다. 이 날 은 미타카 다이에(大英) 극장에서 야마시타 코사쿠(山下耕作)*의 <승천하는 용>(좋은 영화다)과 아츠미 마리*의 <좋은 거 드리죠>(좋은 제목이다)를 동시 상영으로 보았다. 5일에는 신주쿠의 게이오(京王) 명화관에서 <석양을 향해 달려라>와 <이지라이더>를 보았다. <이지 라이더>는 그것으로 세 번째 관람이다. 1971년이란 해는 대학의 학생 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화되어 폭력적인 내 부 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아주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남자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잘난 척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다. 인간이란 특별히 대의명분이나 불변의 진리나 정신적 향상을 위 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고, 이를테면 깜찍한 여자애랑 데이트나 하면서 맛있는 것 먹고 즐겁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이를 먹어서 되새겨 보면 자신이 몹시도 긴장된 청춘 시절을 보낸 듯한 기분이 드는 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모두들 바보 같은 생각만 하면서 구질구질 살아온 것이다.

오래된 옛 일기를 읽고 있으려니, 그런 분위기가 삼삼하게 전해져 온다.

*****************

야마시타 코사쿠 : 영화 감독.

아츠미 마리 : 동경태생. 영화 배우.

1968년과 1969년 전공투의 투장이 실패로 끝나자, 학생운동은 전술의 상이함과 주도권 쟁탈전으로 인한 신좌익 당파간의 무장 당파 싸움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어제는 상당히 지쳐 있었는데요, 며칠 간 그렇게 힘들게 지내왔던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신랑과 김치 삼겹살을 구워 먹고 소맥 말아 먹고 나니, 뭔가가 해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자기 계발도 좋고, 재태크도 좋고 다 좋은데.. 가끔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울어버리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학생 운동을 했던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지내셨는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말이죠. 실은 모두들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과 대의적 삶이 모두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블로그 2021​. 10. 9  글입니다. 오랜만에 하루키 한 잔 하시죠.)



매거진의 이전글 김미경님의 '리부트' (도서)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