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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Apr 20. 2021

맥주에 관하여

결국 카스로 정착한 이유는?


맥주는 인생의 맛이다. 어느 술이든 그렇지만 맥주는 특히 그러하다. 여기저기 같이 놀다가 돌아와 보면 알 수 있다. 내 서방이 (카스가) 최고인 것을.


나 역시 많은 맥주로 방황을 했다. 버드와이저나 아사히, 하이네켄, 칭따오, 호가든, 블랑..

(사실 호가든과 블랑은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해서 마셨으나 나에게는 처음부터 너무 먼 그대,였다)


물론 중국 음식에는 칭따오가 그만이고, 깔끔한 맛을 원할 때는 하이네켄만 한 것이 없다.

가수 성시경님 만큼의 부드러움을 원할 때는 스텔라 아르투아를 마신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잠옷 바지를 입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무엇을 마시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주로 카스를 캔으로 마신다.

친구와 집이나 술집에서 유리잔에 따라 마시는 맥주도 좋아하지만, 혼자(신랑은 술을 못해서 집에서는 거의 혼술) 고독한 미식가(?)처럼 앉아 캔맥주의 마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카스는 그냥, 나의 벗이다.


친구는 하나면 안된다. 너무 집착하면 버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친한 친구를 두었는데, 사실 이 친구가 찐, 이기는 하다.

그의 이름은 이슬이.


이슬이는 나에게 다양한 변주를 알려 주었다.

폭탄주(맥주와 섞는 것)와 더불어, 요구르트 소주, 레몬 소주, 수정과 소주, 콜라 소주, 자몽 소다 소주, 그리고 원액 등등..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심지어 식혜랑도 섞어도 보았는데, 이것만은 맛이 없으니 하지 마시길 바란다.


어쨌든..


제목이 맥주에 관하여, 인데.. 소주에 또 흥분해 버렸다.


대학 때는 남학우들이 일본 맥주와 양주를 섞어서 먹는 것도 알려 주었다. 참 맛있었는데. 정우성 닮은 남학우와 별로 안 잘 생겼지만 머리가 좋은 그의 친구를 버리고 나는 택시를 타고 돌아왔었다.

그렇다. 나는 참 고지식한 학생이었다.


고지식해서 카스와 이슬이(즉, 우리 서방)로 정착했다. 그를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서서히 가위 눌림으로부터 벗어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인생은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오늘 수업 끝나고 마지막 중학생 녀석이 나간 후에, 영어 샘이 다가와 결혼한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지금은 축복이지만 과거에는 재앙(?)이었다고. 그녀는 내 말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후후. (정말로, 쉬운 인생은 아니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그럴 테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 그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폭풍이 모두 지나간 후에, 술을 거의 마셔버린 지금은.. 억울해서 같이 산다.

그렇다. 방금 전의 그와의 산책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날도 오는 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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