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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May 30. 2022

오랜만에 평촌에서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를 읽고 있다

평촌에 나온지 무척 오랜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턱이 자꾸 빠지고 통증도 점점 심해졌지만 병원에는 가기 싫어했던 시절,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몸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니 많이 걸으면 나을 겁니다.'라는 말을 믿고 엄청 걸었었다. 안양5동(예전에 살던 집)에서 평촌의 롯데 백화점까지 빠르게 걸어갔다가 걸어오곤 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턱의 통증과 더불어 허리까지 나았던 기억이 있다.


안양역사에 있던 교보문고가 범계역 롯데 백화점으로 옮겨 간 이후 자주 가곤 했었지만, 점점 바빠지고 Yes24로 책을 주문하거나 안양역 주변의 서점에만 들르다보니 교보에는 한참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오늘, 다른 코스의 산책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주접 지하차도(정말 이런 이름이다)'를 지나 범계역에 다녀왔다. 늘 큰길로만 다니다가 네이버가 알려주는 길로 가니 10분 넘게 절약도 될 뿐더러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어쨌든 이것 또한 독서모임 덕분이다. 독서모임 장소를 정하려고 여러분들과 의논하다가 평촌을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이니까.


어쨌든, 친구들을 만나러간 신랑을 뒤로 하고 혼자 초밥을 먹고 서점에서 에세이 하나를 사서 걸어서 집에 왔다(사실 순서는 이 반대. 에세이를 사고 초밥을 먹고 걸어왔습니다. 갈 때는 신랑이 차로 던져놓고 갔고 올 때는 너무나 청량한 기분을 안고 밤을 넘어서 돌아왔어요).



도쿄에서 나고 자란 비혼인 제인 수 작가님의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라는 작품을 읽고 있다. 표지를 보니 이 이야기가 티비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일 년치 집세를 내어주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부분이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잘 알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냈으니 아버지는 제대로 알아두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좋았다.


아직 3분의 1밖에 읽지 않았지만 지금의 느낌을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책의 두 부분의 귀퉁이를 접어 놓았는데, 여기에 남겨 두고 이만 총총 합니다.


트럼프에게는 미워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사업이든 뭐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돼.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야지.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은 꿈을 보여 주거든. 사람들에게 꿈을 갖게 해. 그런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27~8페이지, 네 번이나 파산했지만 재기한 트럼프에 대해 작가님의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부분)
미담은 거창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술 못 하는 유전자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또렷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비열한 이야기든 실망스러운 이야기든 웃어넘기고, 아무리 형편없고 힘겨운 상황도 애증으로 헤쳐 왔기에 지금의 현실을 얻은 게 아니겠는가. (72페이지,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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