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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Dec 24. 2023

일어를 공부하다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된 사연은

제가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 것 같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제가 어머니와의 성격 차이로 인해(사실 어머님은 화를 풀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이 바로 저였습니다) 하루하루 숨쉬기도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며 저는 일본 문화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한 때는 소설과 애니메이션 등 일본 것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그 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소설과 에세이, 무라카미 류의 <69>와 <영화소설집>,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등의 작품이 강렬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으며 아픔을 많이 위로받았고, 류의 소설은 아, 이런 식의 삶도 가능하구나, 라는 걸 알려 줬고 하루키의 경우에는 라이프스타일, 쿨한 그 마음가짐 그리고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느낌 등을 배웠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상실의 시대>를 정말 힘들 때마다 강아지가 뼈를 핥듯이 그렇게 붙잡으면서 제정신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물론 심리학 책, 무협지, 역사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이문열님이 편역하신 <삼국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조정리 선생님의 책과 <여명의 눈동자>, <인간시장>, 그리고 유시민 선생님, 공지영 작가님의 책도 읽었습니다만. 어쨌든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이 두 작품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은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고등학생 버전 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으로 마찬가지로 가이낙스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일본문화에 빠져 살다가, 일본어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서로 읽고 싶었던 것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히라가나가 너무 글자가 모두 비슷하고 허접하게 느껴져서 한 두 달 학원 다니고 포기를 했었습니다. 원래 제가 끈기가 많이 부족한 편이기도 하구요. 그러다 저는 기무라 타쿠야라는 일본 배우를 알게 되고 그가 나온 작품은 거의 모두 섭렵을 하게 됩니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뷰티풀 라이프>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1억 개의 별>이 가장 마음에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뷰티풀 라이프>그 유명한 기타가와 에리코가 작품을 썼는데요. 휠체어를 타는 시한부 여자 주인공 쿄코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라고 말했던 그 대사가 제 마음속에 무척이나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뷰티풀 라이프의 대사를 원어로 너무 알아 듣고 싶어서 저는 결국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밤마다 CD로 구운 <뷰티플 라이프> 드라마를 틀어놓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원서도 대략 70권 정도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는 오피큐R 님의 네이버 블로그


그런 사실을 알고 주변에서 왜 JLPT 시험을 보지 않느냐, 고 말을 들어 그냥 시험을 보았고 2급, 1급에 차례로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영어 과외 할 때 일본어 과외도 하고는 했지만, 일본에 갔다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학원에 취직하기는 좀 그랬고요. 그냥 국어 강사를 하다가 지금은 영어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공부하면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되어 그만큼 세계관이 넓어집니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와 비슷한 점도 굉장히 많지만 어쨌든 영어만큼은 아니어도 제 세계와 시야가 그만큼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힘들었던 당시에는 굉장히 유용했던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도망칠 곳이 필요했고 저는 일본어와 그 조금은 다른 세계에 크게 의지했것 같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일본어가 요즈음 다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번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고민하고 있는 참입니다.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이 이것저것 기웃대는 삶이란 재미있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은 일본어로 인해 한자를 공부하게 되어 또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든 공부는 모두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시간들을 어떻게 녹여내는가가 제 삶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간의 여러 애씀이 저에게 남아 있어 마음 수련도 많이 하고 성장하여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되찾고 타인을 존중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줄 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일어는 수요가 별로 없어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일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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