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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Nov 23. 2020

아이의 부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로부터 받는 인사이트나 자극이 좋기 때문이다. 직업이 비슷한 사람들은 공감대가 많아서 좋지만, 직업이 다르면 서로 모르는 부분을 채워 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이 즐거움을 누리려면, 반드시 살짝 안타까운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 여부 뒤에 이어지는 아이에 관한 물음이다.


결혼한 지 15년 되었다고 하면, 아이는 몇 살이에요?, 라고 물어본다.

아이가 있느냐, 는 질문이 아니다.

오픈 채팅방에서는 결혼한 지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사람 = 육퇴를 고대하는 육아맘, 이라는 공식이 어떠한 전제로 깔린다. 여기에, 결혼 후 아이가 없는 사람들의 자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아무렇지 않게 - 아무런 의도나 적의(敵意) 없이 -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당연하게도 나는 상처를 받는다.


나이가 찬 미혼 여성에게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애인은 있어요?" , "왜 결혼 안 해요?"라고 시원하게 질문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궁금하니까 물어본다, 라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있으니 딱히 누구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씩만 생각하면서 말을 내뱉자, 라는 뜻에서 하는 이야기다.




나는 내가 정말로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착각했었다.

드라마나 모임에서의 화제가 아이, 육아,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면, 나는 왠지 불편했다. 자격 없는 사람이 잘못 들어와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생활비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은 아이가 없으니 생활비 걱정 없죠? 그냥 남편이랑 여행이나 다니면 되겠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김이 빠졌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나는, 아니 우리 - 신랑과 나 - 는 사실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맞다. 둘이서 단 한 명의 사회 구성원도 생산해 내지 못했고 그에 재화를 쓰지도 않았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다만, 그만큼의 마음의 짐이나 아픔도 지니면서 살고 있으니, 너무 미워하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아이의 부재가 촉발하는 것 중 하나는, 언제 어느 때라도 무례함과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연하게 대처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이미 상처 따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다.

나에게는 2가지 정도의 주문이 있는데, 그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와 '뇌를 해킹하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다.


첫 번째 문장은 공지영 작가님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에서 사용하신 말로,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구절은 공지영님도 다른 작가분의 것을 가져와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스콧 애덤스님이 '열정은 쓰레기다'에서 쓰신 말로 요즘 유명한 인플루언서 라이프 해커 자청님에 의해 많이 회자되었던 말이다.


어쨌든 나는 새나라의 어른으로서 맑고 밝게 자라나서 이 사회에 아주 작은 기여라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됐다, 싶다. 다만 부캐릭을 좀 더 키워서 메인으로 삼고자 하는 아주 작지만 큰 소망이 있다. 그게 뭔지는 일단 비밀에 부쳐 둔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사실 마음은 따뜻하다. 아이는 아니지만 다른 이의 숨소리가 저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 라는 것은 그렇게도 마음 저미게 기쁜 것이다. 그것은 마음속의 부(富)이다. 아이가 있다면 그 부는 5300만 배 정도 부풀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감사해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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