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인들 1

사랑하는 가족들

by 수윤

두 번의 수술이 지나가는 동안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건 가족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재난 같은 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쳤다.


아빠는 매일같이 공장-병원-집을 왕복했다. 속옷이나 수건 등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가 아빠에게 틈틈이 주문을 넣었다. 아빠는 일하기 전이든, 일하는 중이든, 퇴근한 후든 언제든지 필요한 것들을 갖다 주었다.

나는 병원 입원 기간 중 병원식을 먹은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 간수치가 올라가 속이 늘 메슥거렸고, 병원식 특유의 비릿한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다. 비싼 영양제를 맞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밥 한 숟가락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짭짤한 김, 매콤한 무말랭이 무침, 치즈빵 등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사다날라준 덕분에 나는 겨우 밥을 먹고, 회복할 수 있었다.


아빠가 바깥에서 음식과 물품들을 날라주는 배달원이었다면, 동생은 내수를 담당했다.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필요한 수건, 속옷, 전자기기 등을 챙겨서 아빠에게 건네주는 역할을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동생이 내가 많이 불안할까 봐 첫 수술 다음 날 커다란 분홍색 인형과 담요를 함께 보내온 거다. 덕분에 나는 병실의 핑크 공주가 되었다.


동생은 심심해할 나를 위해 아이패드를 보내면서 아이패드 거치대도 구매해서 함께 보냈다. 병원 침대 가장자리에 설치해서 누워서 아이패드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였다. 시간 때우라고 각종 OTT도 동생이 결제를 해놓았고, 침대에 누워있던 2주간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고생한 건, 엄마였다. 허리도 좋지 않은 엄마가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나를 간호했다. 혈전을 막아주기 위해 혈관확장제를 달고 있었는데, 피가 나면 안 돼서 양치도 금지되어 있었다. 누워만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씻을 수도, 머리를 감을 수도 없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데, 씻는 것이 웬 말인가. 엄마는 식사 후에 가글을 시켜주고, 아침저녁으로 손수건에 물을 묻혀 닦아주었다. 얼굴부터 몸까지. 누워만 있으니 몸 여기저기가 뭉쳤는데, 마사지를 해주고, 누운 상태에서 스트레칭도 도와주었다. 스트레칭을 좀 하고 나면 살 것 같았다. 가장 미안한 건, 역시나 누워서 볼 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워있던 여러 날 중 하루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 때도 내가 다 해준 건데, 뭐가 힘들다고 그러노"


눈물을 꾹 참았다. 고맙고 미안했다. 나중에 엄마가 아픈 일이 생기면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해줘야지, 생각했다.

드디어 2주가 지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침대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는 거였다. 얼마나 머리가 떡이 져있었으면 엄마가 샴푸만 3번을 시켜주었다. 팔에 주렁주렁 달고 있던 링거도 다 뺐다. 한 손이라도 가벼우니 날아갈 것 같았다.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하나하나 감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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