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by 수윤

보통 병원의 하루를 지루하다고 표현한다. 반복되는 일정, 제한된 활동, 넘쳐나는 시간의 삼박자가 권태로움을 만들어 낸다. 오늘은 병원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말해 볼까 한다.


- 아침

오전 7시~8시 사이가 되면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부스럭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불이 탁 켜지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을 내뱉는다. 아침이 배달되어 오고 씩씩하게 아침을 먹는 사람들 틈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10분간의 단잠을 더 즐긴다. 마음 같아서는 아침을 거르고 싶지만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순 없다. 대신 나는 병원밥을 먹지 않고 사식을 먹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 수 있었다.


우리 엄마의 대단함을 말하자면, 아침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아빠로부터 날달걀과 그릇, 소금을 공수받아 전자레인지로 계란찜을 만들어 먹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간단한 밑반찬과 계란찜, 햇반 한 개를 엄마랑 나눠 먹는다. 돌아서면 또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리고 간식들을 먹을거기 때문에) 아침은 간단하게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면 의사 선생님 회진 도는 시간이다. 만일 늦잠을 잔 날이면 회진이 끝나고 아침을 먹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크록스를 신고 후루룩 병실에 오셨다가 호다닥 나가신다. 의사 선생님의 바쁨이 몸놀림에서도 느껴진다. 선생님은 볼 때마다 "많이 아프진 않아요? 진통제를 좀 더 주라고 할까요?"라고 다정하게 물으신다. 하지만 나는 어디선가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으면 잘 낫지 않는다는 속설을 듣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의사 선생님 회진 전까지는 5분 대기조 모드다.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산책 등은 최대한 미루고 미룬다. 회진이 끝나면 오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12시까지 할 일이 없다. 엄마랑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사 먹으러 1층에 다녀오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에 채혈이나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 점심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자유시간이 다가온다. 지루함의 시작이다. 5시간 동안 무얼 해야 하나. 보통 동생이 보내준 아이패드와 이북리더기로 영화와 책으로 시간을 채운다. 어떤 날은 아이패드로 노래방 MR을 틀어두고 노래를 부르고 논 적도 있다.(1인실을 쓰던 시절의 이야기다.) 시간을 때우는 것도 창의성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밌는 일은 없어진다. 심심한 것도 큰 고통이다. 늦은 오후가 되면 옥상이나 다른 층으로 산책을 나간다. 병실을 나서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정육점에서 손을 크게 다친 아저씨, 공장에서 양손을 다쳐 온 20대 초반의 남자, 농촌에서 일하다 다친 아주머니, 카페에서 실링 기계에 손을 다친 20대 여자. 그들의 사연을 다 적을 순 없지만 다양하고도 아프다. 한동안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파 그들과 이야기하기가 꺼려졌다. 나의 아픔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으므로.


-저녁

드디어 저녁이 찾아온다. 저녁엔 배달을 종종 시켜 먹었다. 코로나 때라 병원 안으로 배달원이 들어오지는 못했고, 엄마가 일일이 1층에 가서 배달음식을 받아왔다. (여담이지만 엄마는 매일 아빠, 배달원과의 접촉으로 1층에 매일같이 내려갔기 때문에 경비 아저씨가 엄마 얼굴을 외울 정도였다.) 메뉴는 찜닭, 서브웨이 샌드위치, 등갈비, 피자 등으로 다양했다. 배달시켜 먹을 때마다 아픈 곳이 단지 손가락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도 마음껏 못 먹었으면 더 슬펐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비로소 밤이 찾아오는데, 잠자기까지도 4~5시간이 남는다. 이제는 더 할 것도 없다. 이쯤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지치기도 한다. 저녁엔 씻고,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쓴다. 산책을 얼마나 했는지 좁은 병원 안에서 하루에 만 보 가까이 걷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밤 9시나 10시쯤 되면 수면제를 가져다주신다. 난 병원에서 잠을 못 자서 수면제를 잠시 처방받아먹었는데, 약을 먹고 나면 다음날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잔다. 이것 하나만큼은 좋았다.


쓰고 보니 무료한 하루를 심심하게 늘어놓은 것 같다. 고통이 없는 지루함은 때론 보내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떤 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행운이었다. 이렇게 쳇바퀴 도는 병원에서의 시간을 흘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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