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王安石)의 새해 첫 날(元日)
새해입니다. 새로 먹은 나이가 어딘지 어색하고, 무게감이 둔중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떡국 한 그릇, 까치 소리, 오랜만에 찾아온 친척들의 반가운 얼굴은 잠시 그런 걱정을 잊게 합니다. 차례상에 올라갔던 곶감에 음복하는 술 한 잔이면, 걱정보다 막연한 낙관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 각국에는 설을 쇠는 독특한 풍습들이 새해를 행복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왔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토시코시소바(年越そば)라는 국수를 먹으며 장수를 축원하고, 첫날에는 음식을 새로 하지 않으며 하루를 쉬어간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폭죽을 터뜨려 안좋은 기운을 쫓아내고, 차례하고 음복을 하는 것처럼 어른부터 아이까지 한잔씩 술을 나눠마신다고 합니다. 이런 풍습은 수백년 전 문헌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것들입니다. 그 풍습에 담긴 행복감을 바탕으로 전해져오는 것일 텝니다.
대략 천년 전, 중국의 시인 왕안석(王安石)도 비슷한 풍습들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설날을 보낸 장면을 담은 시를 한 편 같이 보겠습니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새해 첫 날(元日)
첫 행에는 폭죽 소리가 나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중국의 설날 풍속입니다. 원래는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나쁜 귀신들이 놀라도록 터뜨렸다고 하는데 시인은 이 속에 지난 한 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봄바람이 따뜻함을 보내온다고 합니다. 비록 시인의 고향인 중국 푸저우(福州)는 일본 오키나와와 비슷한 위도로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다고 하지만 봄바람을 이야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관련 있습니다. 우리가 12월에서 2월을 겨울, 3월에서 5월을 봄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당시 사람들은 음력 1월부터 3월까지를 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조금 춥더라도 봄을 일찍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정말로 불어온 것인지, 마음 속에 불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봄바람은 시인을 따뜻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여기에 새해를 맞아 술도 한 잔 들이니, 더욱 따뜻할 것입니다.
새해 아침 떠오르는 해는 다른 364일 떠오르는 해와 다를 바 없지만, 어딘가 다른 듯하고, 희망이 담깁니다. 시인도 그런 마음으로 "曈曈"이라는,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를 사용해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담아냅니다.
아침 햇살을 가득 받은 대문 앞에는 부적을 바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연에서 대문에 놓인 시선을 다시 옮기지 않고, 유지한 채 또 한 장면을 더하는 시인의 시어 배치가 탁월합니다. 이 부적은 우리나라에서 입춘에 "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써붙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해동안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이는 것으로, 귀신들이 무서워한다는 복숭아 나무를 깎아 만든 것입니다.
시에는 한 번도 좋다는 말, 기쁘다는 말이 없지만, 새해 풍습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좋은 일, 기쁜 일이 가득하리라는 희망이 전해져 옵니다. 우리가 며칠 전 설날에 먹은 떡국 한 그릇이 그 희망의 마음도 함께 먹은 것이길, 그 마음으로 한 해를 잘 또 이겨나가길 소망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