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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 내린 이별

원호문(元好問)의 영정을 떠나며(穎亭留別)

by 장동원

한파와 함께 큰 눈이 찾아온 한 주였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나가기가 꺼려지다가도 눈 덮인 바깥 풍경을 볼 생각에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미끄러운 길에 덤벙대다가도 멀리 보이는 설산의 아름다움에 앞길의 위태로움이 잊혀집니다.


옛 사람들은 눈을 주로 위태로움이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길이 얼어붙어 오가기 힘들어지기도 하고, 눈에 맞아 젖으면 더 추워지기 때문입니다. 눈을 지금과 같이 아름답게만 볼 수 있는 것은 눈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 된 문명을 가지게 된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거나,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순백의 광경이 절로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경우도 있고,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묘사한 눈 내리는 장면이 두고보니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 내린 모습을 담은 아름다운 시는 여러 편이 있습니다. "시경(詩經)"의 '북풍(北風)', 이백(李白)의 '고요한 밤의 그리움(靜夜思)'이나 유종원(柳宗元)의 '강에 내리는 눈(江雪)' 등이 그 가운데 국내 문학선집에 소개되어 왔습니다. 오늘은 국내에 생소한 시인의 작품에서 눈 내린 아름다움을 새롭게 만나보고자 합니다.



故人重分攜 벗과 헤어지기 아쉬워

臨流駐歸駕 물가에서 돌아가는 수레 멈춰세우다.

乾坤展清眺 하늘과 땅은 맑은 모습 펼치니

萬景若相借 모든 경치가 서로 기대고 있는 듯하여라.

北風三日雪 북풍에 사흘 눈 내린 것은

太素秉元化 조물주가 빚어낸 조화런가.

九山鬱崢嶸 아홉 산이 빼곡하게 높이 섰으니

了不受陵跨 조금도 범할 수가 없겠네.

寒波澹澹起 차가운 파도 맑게 이는데

白鳥悠悠下 흰 새 아득히 내려가는구나.

懷歸人自急 돌아갈 생각 품은 사람은 절로 급해지건만

物態本閑暇 만물은 본디 그렇듯 한가하기만 하네.

壺觴負吟嘯 술잔에 시 구절 얹어지는데

塵土足悲咤 날리는 흙먼지는 슬픈 탄식하기에 족하구나.

廻首亭中人 고개 돌려보는 정자 가운데 사람,

平林澹如畫 고요한 숲은 맑기가 그림 같아라.

-원호문(元好問, 1190-1257), 영정을 떠나며(穎亭留別)


작자는 금(金)의 시인 원호문입니다. 금은 여진족이 12세기에 중국 북방을 차지하고 세운 왕조입니다. 우리에게 금이라 하면 유목민족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들의영토에 굳세게 뿌리내린 한족문화는 금의 통치 속에서도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금은 한족에겐 종래의 과거시험과 통치제도, 유교와 한문 문화를 그대로 누릴 수 있게 허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원호문은 이런 배경에서 자라난 문인입니다. 금의 조정에서 일하지만, 한족 문화의 정수를 추구하였지요. 한편, 그 전의 문인들이 중국 중부와 남부를 주로 담아온 것과 달리 금이 지배하는 북쪽에서만 생활한 원호문은 북방의 정경에 주목했습니다. 여기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시는 산 속 정자에서의 이별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은 한 번 이별하면 언제 다시 볼 지 기약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헤어짐의 의례는 훨씬 각별했습니다. 함께 성을 떠나 그와 함께 하루 혹은 반나절 거리의 길을 같이 간 뒤, 그곳에서 연회를 벌이며 마지막 이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이를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송별(送別),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유별(留別)이라 합니다. 시인은 제목에서 "유별"이라 하였으니 떠나는 입장입니다. 첫 연에서 물가에 수레를 멈춰세웠다고 합니다. 그곳이 시인이 마지막 이별의 연회를 할 장소인 것이겠지요.


멈춰서니 주변의 자연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 만물은 서로 어우러져서 한 폭의 장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쪽이 있어, 다른 한 쪽도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을 시인은 "서로 기대고 있는 듯"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헤어지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도 그러한 관계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모습은 사흘 연이어 내린 눈에 더욱 신비롭게 변했습니다. 이것이 조물주의 조화가 아닌지 경탄합니다. 눈이 쌓이면 산은 더욱 높고 신비로워 보입니다. 순백의 모습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 차마 저곳을 오르거나 지날 수 있을지 떨게 합니다. 시인은 이를 네 구를 동원하여 묘사하며 조금도 범할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누구도, 조금도 범할 수 없는 저 산의 고결한 경지는 시인과 청자의 굳은 지조를 상징합니다. (한국 현대시 가운데 김종길의 '고고'가 북한산의 설경을 이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시선은 물가로 옮겨갑니다. 물가에는 파도가 일고, 그 위로 새들이 날아갑니다. 앞서 산들에서 만들어진 맑은 이미지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한층 더 맑게 느껴집니다. 시인의 주관적인 판단과 정서조차 빠진 채 담아낸 맑음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산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범할 수 없다"라는 시인의 판단이 들어가지만, 이 연에는 대구 속에 부사어들이 맑음을 그려낼 뿐입니다. 근대의 문인 왕국유(王國維)는 이 구절을 무아지경(無我之境 : "나"도 없는 경지)의 가장 뛰어난 구절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별의 연회가 무르익습니다. 여러 생각이 스칠 터입니다. 이별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아득한 갈 길을 언제 다 갈지 걱정도 일어납니다. 이런 시인의 마음과 달리 저밖의 풍경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대비 속에 근심은 깊어갑니다. 술과 시로 근심을 잊어보려고 하지만, 떠나오며, 또 앞으로 갈 길에 흩날릴 흙먼지를 생각하면 슬픈 탄식이 오히려 나옵니다.


시인은 주변을 둘러봅니다. 자신의 복잡한 심사와 달리 숲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소리 하나 없는 것이 그림 같습니다. 시인은 그 그림 안에 자신을 넣어봅니다. "고개 돌리는 정자 안의 사람"은 시인 자신입니다. 조용한 그림 속에 들어간다고 자신 또한 고요해지진 않겠지만, 그림이 담는 저 거대한 자연들 속에 있는 존재인 나라고 생각해봅시다. 눈이 덮은 산, 차가운 파도, 날아가는 새들 아래 나는 아주 작은 존재입니다. 그 작은 존재의 고민은 더욱 작은 것이 아닐까요? 시인은 맑은 자연을 둘러보며 걱정을 일축해보는 자신의 모습으로 시를 맺어 이 근심이 덜어지길 소망해봅니다.


가야 할 길을 앞두고 고민들이 쌓인다면, 이 시인처럼 맑고 높은 자연 속에 걱정들을 줄여나가보는 것은 어떨지요. 마침 산들이 눈을 맞아 희게 빛나는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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