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쇄도전러 수찌 Nov 29. 2020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2019년 말, 새해엔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생활을 많이 하리라 다짐했다. 코로나가 터졌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내게는 문화생활 창구가 사라진 것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바탕이 흔들리는 시간이었겠지.

지난 금요일.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기 전 예약해 둔 재즈 보컬리스트의 공연을 봤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취소될 것 같아 너무너무너무 걱정했다며 고백하는 보컬리스트. 거의 울먹이며 호소하는 그 마음이 와닿아 버렸다. 시 주최로 이뤄지는 공연, 큰 기대 않고 갔던 것을 실토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프로’가 얼마나 공연에 공들이는 줄 대략 알면서도. 안일한 마음으로 찾아간 것을 사과하고 싶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고 했다. 그녀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로 살아가는데, 그간 무대에 설 일이 없어 힘들었다고도 했다.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온몸이 후덜덜 떨리는 나로서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방안이 없지만, 내가 여행에서 얻는 힘과 비슷한 힘이 아닐까라고 짐작해 보았다. 어쨌든 ‘현생을 버티게 한다’라는 같은 기능을 하니까.


간만의 공연. 거리두기로 인해 한 좌석 걸러 한 좌석씩 관객이 앉았다. 이마저도 공연장은 절반쯤만 찼다. 간만에 무대에 서는 데다가 낯선 공연장 풍경 때문에 가수도 얼어버린 것이 티가 났다. 그래도 공연은 시작되었고 여러 재즈 노래가 이어졌다. 공연 시간이 반쯤 흘러갔을 때 가수가 ‘베사메 무초’를 불렀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할 재즈곡. 내 눈은 가수와 악단만을 향해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적잖이 집중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베사메 무초를 부르면 매번 관객분들이 각자 추억에 잠기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노래가 좋아요.”


노래를 마친 보컬리스트가 말했다. 코시국이라 큰 호응이 없었는데도, 여러분이 얼마나 공연을 즐기시는지 느껴졌다고도 덧붙였다. 신기하구먼. 말 한마디 없이 그 분위기가 서로서로 공유된다니. 나도 잠시 동안 추억에 잠겼는데, 어떻게 알았지?


한 시간 반여 공연이 끝날 때쯤에야 공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풀어졌다. 가수와 연주자 사이, 가수와 관객 사이. 여전히 말로 소통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오감으로 느껴졌다.

사진 찍을 수 없어, 퍼온 김혜미 보컬리스트 사진으로 대체

그녀가 입은 무대의상 위 까만 스팽글은 무대 조명으로 쉼 없이 빛났다. 등이 훤히 파진 의상 디자인은 야하기보다 자신감의 일종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인간 보석’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예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보석같이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보석 같은 그녀가 부러웠다.


자기 일을 잘 해내는 모습, 그런 제 모습을 잘 알고 즐기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멋졌다. 진정 ‘예술가’라 부를만한 자세였다. 타고난 재능을 발견해 갈고 닦아 남 앞에서 뽐낼 줄 아는 사람.


재능을 발견해  기회
갈고 닦을 열정
 앞에 당당할 자신감


하나도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것들을 교집합 해내는  성공한 자들. 그래서 예술가란 희소한 집단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열광한다.




얼마 전 비보이 길거리 공연도 본 적이 있다. 날이 제법 쌀쌀해 윗도리를 여미고 있는데, 티셔츠 하나만 걸친 그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헤드스핀으로 머리가 다 헝클어져도, 추운 날씨에 배가 훤히 드러나도 관계없다는 듯 춤췄다. 박수가 쏟아지면 그들은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분가량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지 안다. 직접적인 연습 기간은 몇 달일 것이고 기량을 갖추기 위해 아마 몇 년은 노력했겠지. 시켜서는 못할 일이다. ‘좋아서하지 않으면 추운 가을과 겨울 사이 ,    받지 않고 길거리에 나설 이유가 없다.


같이 앉아 공연을 보던 친구와 어느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저 사람들 진짜 행복해보여.”

그렇지? 나도 지금  생각했는데.”




집 안에 갇힌 귀여운 강아지도 좋지만. 안 귀여워도 사람으로 태어나버렸기에.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무대 위 가수처럼 재능 넘치게 태어나지는 못했다.

그녀처럼 열정이 남다르지도 않다.

남들 앞에 설 자신감은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원하는 일’ 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어 글을 쓴다.


글은 그 분야에서 No. 1이 아니라도, 유노윤호처럼 열정 만수르는 아니라도, 남들 앞에 서는 중압감을 감수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할 분야다. 동시에 현생을 위해 ‘원하지는 않는 일’을 계속해 내어야 하는 팔자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어찌하겠니. 누구나 보석이 될 수 있는 건 아닌걸. 오늘도 현실과 이상에 한 다리씩 디디고 섰다 이상 쪽으로 괜히 상체라도 기웃거려 본다.



작가의 이전글 무미건조한게 전부라 감사한 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