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집다워야 집에 있죠...
올해는 유난히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무미건조’라고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자영업자들과 취준생들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이미 이가 바득바득 다 갈렸으리라. 코로나와는 다소 무관한 직장인이라서 그저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일상조차 감사한 요즘이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었다. 종전보다 더 강력해진 2단계가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이 없던 동네 개인 카페는 ‘Take out만 가능’이라고 매직으로 벅벅 쓴 종이를 유리문에 붙여뒀다. 매일 9시까지는 장사하던 가게인데, 6시까지만 영업이라고도 덧붙였다. 널리고 널린 메가 커피와 커피 온리를 두고 굳이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개인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내일 퇴근길에는 왠지 그 가게가 닫혀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버스에 앉아 멍하니 길 따라 시선을 옮기다 ‘임대’ 딱지가 줄줄이 붙은 상가를 봤다. 아, 진짜 코로나가 심각하구나. 동네에 ‘이런 곳도 장사가 되나?’ 싶던 가게들은 어김없이 간판을 내렸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공실이다. 부동산에서 어서 가게를 빼기 위해 그 자리에 ‘돈 쌓이는 자리’ 플래카드를 큼지막하게 붙였다.
‘돈이 쌓이는 자리면 지난 주인은 왜 나간겨?’
이렇게 죽니 사니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아 내 처지는 다행으로 느껴진다. 남과 비교해서 위안 얻는 것만큼 찌질한 일이 없다는데, 어쨌든 요즘엔 그렇다. 작고 귀엽던 월급이 이렇게 소중하게 여겨지다니.
그래도 내게도 고충은 있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올해 모임은 이제 없는 것으로 합시다.’라는 뉴스 제목을 봤다. 올해? 와, 올해가 다 끝나가는구나. 2020년은 이렇게 지나가 버리는 모양이다.
‘집에 머물러 주세요’ 라는 안전 문자가 매일 오는데, 집에 콕 박히기에 내 방구석은 너무 좁다. 어떻게든 방구석에서 놀아보려고 명화 그리기도 사고, 책도 주문했지만……. 지난 주말을 집에서만 보내며 집에서만 머물 수 없는 집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리된 공간 없이 한 칸 방이 전부인 내 집은 너무 작고 물건들로 붐빈다. 침대에 누워 일과를 보내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공간에 주말 내내 갇혀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얼마 전 세대별로 재택 근무하는 공간이 다르다는 기사도 봤다. 20~30세대는 주로 방에서 업무를 보고 40~50세대는 거실에서 업무를 한다고 했다. 댓글이 웃겼다.
“이것도 조사라고 했냐? 거실이 없는데 어떻게 거실에서 업무를 봐.”
20~30세대가 방에서 업무를 보는 이유는 방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실이 없어서다. 맞아요 맞아!
이런 와중에 호텔을 개조한 ‘청년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주장도 들린다.
“한번 가서 살아보시라구요.”
일주일만 침대와 호텔 탁자가 전부인 (아, 두 쪽짜리 싱크대도 있음) 그 방에 갇혀 지낸다면 정책 제안자들은 본인이 잘못 생각했다고 미안하다고 청년들에게 석고대죄할 것이다.
집이 아닌 ‘방’에 종일 갇혀있으라고 하는 일은 정말인지 가혹하다. 올해 초 대구 방문 만으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명 받았을 때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심신이 피폐해졌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로 모두가 피폐하다. 자영업자는 업장이 박살나서 미치겠고, 취준생은 일자리 구멍이 좁아져 초조하다. 그 와중에 아주 소심하게 작은 집에 사는 청년도 힘들다고 외쳐보고 싶다.
“집이 집 다워야 집에 있죠!ㅠㅠ”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과 안정감을 이 집에서 몸소 겪었다. 다음 집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만한 집’으로 구해야지. 그러려니 ‘신용 대출 규제’ 소식도 들려오네. 아이고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