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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Oct 14. 2021

보통날

06:50, 오양은 기상 알람을 들었다. 듣기만 했다. 아니 손가락도 움직였다. 스마트폰 알람을 겨우 손가락 두 개 까딱거려 미뤄두고, 다시 누운 방향을 바꾸어 눈을 감았다.      


07:00, 오양은 세상에서 제일로 짜증나는 그 소리를 다시 듣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실전 알람이다. 머릿속으로 엑셀 표보다 촘촘한 시간표가 대번에 그려진다. 

‘여기서 뺄 수 있는 일은?’

‘머리 감기.’     


그렇다. 오양은 종종 머리를 이틀에 한 번 감는 습성이 있다. 머리를 묶고 가는 날은 대개 새로운 스타일링의 목적보다는 시간 절약의 목적이 더 크다. 

‘15분 더 자도 됨.’

오양의 행복 회로가 적당한 (사실은 마지노선) 시간을 계산해내었다.      


07:20, 이 즈음에야 겨우 눈을 뜬 오양은 잠시간 멍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쓸데없이 들여다본다. 날씨 체크를 핑계로 시작되는 이 루틴은 오양의 뻑뻑한 모닝 안구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07:25, 더는 안된다는 느낌을 오감 아니 육감으로 강하게 받은 오양은 드디어 발을 질질 끌며 욕실로 향한다. 구취를 지울 목적으로 양치를 벅벅 해낸 뒤, 클렌징폼을 이용하여 얼굴의 기름도 지워낸다. 베게 피의 오돌토돌함이 얼굴에 복제되어 닿는 감촉이 좋지는 않지만, 9시 전에는 지워지리라 믿는다.      


07:40, 스킨-로션-선크림을 바른 오양. 갈등에 빠진다.

‘파운데이션 할까, 말까?’ 

요즘, 마스크라는 강력한 방패를 앞세운 오양. 파운데이션을 비롯한 화장이 점점 귀찮아지는 중이다. 어차피 얼굴의 1/2을 가리는데 괜히 화장품을 남발하는 것은 나 뿐 아니라 지구에도 좋지 못한 행동일 거라는 합리화를 하는 중이다.      


번뜩!

비 올 것 같은 아침. 듬성듬성한 구름을 뚫고 갑자기 햇볕 한 줄기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지난밤 01:40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오양의 눈 밑이 무슨 나무껍질처럼 짙고 거칠게 보였다. 속이 상한 오양은 어쩔 수 없이 파운데이션 펌프를 쭉 눌렀다. 

‘옛날엔 밤을 새워도 괜찮았는데…….’

자꾸만 옛날을 떠올려봐야 소용은 없다. 괜히 짜증이 난 오양은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대충 끼얹고 스펀지로 두들겨본다. 어쩐지 같은 양을 발라도 눈 밑은 다른 부위만큼 밝아지지 않아서 더더욱 짜증이 올라온다.     

 

8:00, 오양은 옷 코디에 젬병이다. 아니 옷뿐만 아니라 사실은 다방면에 ‘센스’가 없다고 봐야 맞다. ‘회사’는 매일 보는 사람이 가득하기에 ‘매일’ ‘다른 옷’을 입고가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옷은 사도 사도 부족하고, 있는 옷을 믹스매치하는 능력은 더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충 사람처럼 보일만 한 셔츠와 슬랙스 따위를 걸치고 출근 가방을 멘다. 회사에는 매일 다른 가방과 함께 아름다운 옷차림을 선보이는 동료들도 많다. 어떻게 아침마다 저렇게 여유 있으며 패션 감각이 넘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오양은 그저 어제와 똑같은 캔버스 운동화를 찍찍 끌고 대문을 밀 뿐이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야 신발을 제대로 신어내는 약간의 정성을 보였다.     

8:20, 출퇴근길에서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을까? 오양은 시끄러운 지하철을 타는 동안 그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서핑을 할 뿐이다.      


8:50, 머리를 안 감을 수 있어 다행이다. 회사에 늦지 않았다. 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재빨리 탕비실로 달려가는 오양. 계절에 따라 뜨겁게 혹은 차갑게 녹여낸 카누는 ‘월급’과 함께 직장생활을 이끌어주는 쌍두마차다. 쌀쌀해진 날씨에 뜨거운 카누를 말아낸 오양. 

‘오늘도 세이프 해서 다행.’

안도가 섞인 입김을 음료 표면에 불어가며 커피가 적당한 온도가 되도록 식혀냈다.      


18:20 오늘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모니터를 째려보고, 사람과 치댔다. 가을을 타는지 급격한 체력 저하로 얼른 집에 가야 할 것만 같다. 아침에 어찌저찌 굴러온 그 길을 돌아가는 시간은 어째 더욱 피곤하게 느껴진다. 노트북을 편 채로 뭔가를 작성하는 사람도 보인다. 다시 한번 속으로 ‘리스펙!’을 외치며 스마트폰 화면 속 유튜브 버튼을 누른다. 즐겁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영상을 쳐다보다 보면 어느덧 집에 도착한다.      


19:30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대형마트를, 힘이 없다면 적어도 동네마트라도 들러야 했다. 집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트고 뭐고 나도 모르게 이미 집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20대가 끝나가고 30대가 다가오는 오양은 이제 그렇게 많이 먹지도 못한다. 다행히 냉장고에 계란이 몇 알 남았기에 대충 라면 하나 끓일 만큼만 물을 올려 본다. 계란 두 알을 까 넣었기 때문에 영 탄수화물만 섭취하는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대충 저녁을 다 먹어 치웠더니 역시나 눕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오양은 주로 집에서 누워서 생활한다. 어디에선가 먹고 나서 바로 눕는다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아프면 안되는 오양은 ‘눕지 않는지만 눕는 것만큼 편한’ 자세를 이미 전에 발견했다. 베게와 쿠션을 있는 대로 침대 헤드 쪽에 기대어 45도에 가까운 경사로를 쌓는다. 

‘오늘은 글 써야지! 밥 먹었으니까 딱 20분만 쉬는 거야! 진짜 딱 20분!’

라고 굳은 다짐을 한다.      


20분은 쉽게 2시간이 된다. 10시가 넘어가면 어쩐지 더욱 생산적 의지가 바닥이 된다. ‘시작부터 피곤한 오늘’이기에 무리하면 안 될 것만 같다. 

‘오늘은 쉬자.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

여전히 대충 즐겁지만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은 영상과 인터넷 속 자료를 둘러보며 하루가 끝난다.      


과연 내일 저녁, ‘나아지고자 하는 오양’ vs ‘피곤한 오양’ 가운데 승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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