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나도 별은 그자리에
동도 트기 전에 고양이들이 머리맡에서 심심하다고 울어대는 통에, 두 녀석에게 잠시 아는체해주고 나서는 머리맡에 둔 <마음의 진보>를 읽었어요.
<마음의 진보>는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열일곱 살부터 7년 수녀 생활 끝에 환속하여 비교종교학 연구와 강의를 해온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의 기록입니다.
상담실에서 이런저런 종교에 깊이 몸과 마음을 깃들인 사람들을 만납니다.
신에게 기대어 돌봄 받는 고마움으로, 이웃에게 친절하려고 애써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잘못하는 것 같고 해도 해도 뭔가 모자란듯해서, 이러다 결국은 지옥에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삶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상담실에서 만나는 종교인들을 떠올렸습니다.
오랜 세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 인간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종교도 있고, 교세를 확장하는 방식이 부도덕하거나 사람을 옭아매는 방식이면서도 그것이 천국에 가기 위한 방편이므로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거라고 우기는 종교, 이쪽에서 보면 사이비요, 이단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과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종교…
그 속에서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사는 우리를 생각하고, 누군가가 했던 말도 아픈 마음으로 돌이켜 보았습니다.
"지옥이 안 무서워요?
사는 것도 지옥 같은데 심지어 죽어서까지 영원히 불타는 거잖아요!"
Ⅰ. 똑똑한 사람들
카렌은 수녀 생활을 접고 난 후 현실에서 만난 자신의 한계를, 수도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만났던 신앙의 한계와 연결하여 인간의 한계와 신을 대상화하여 의지하고 한계를 넘어가고자 하는 바로 그 '한계'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벌거벗은' 자기와 마주 선 끝에 어느 날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프로그램과 의제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
… 내 손으로 내 인생을 끌어안고 가야 할 때라는 생각"
p. 246
카렌은 수녀 생활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들어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일으킨 발작 증상 때문에 정신과를 찾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으로 중무장한 의사는 카렌의 발작 증세를 과거의 공포를 숨기기 위한 자기 기만으로 규정하고, 자기 이야기를 보다 솔직하게 해볼 것을 주문합니다.
의사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게 없었지만, 카렌이 그럴 준비가 되었는지, 증상이 일어날 또 다른 원인은 없는지 더 면밀하게 살피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던 것 같아요.
카렌은 그 의사와의 관계 경험에서 얻을 게 없다고 여겼지만, 그로 인해서 자신의 상태를 보다 선명히 알고, 자기만의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 더 큰 걸 얻은 셈이지요.
혼란과 자기의심으로 고통받던 그가 여러 번의 정신병원 입원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이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이었다고 해요. 그런 걸 안다는 점에서 자신이 '똑똑하다'고 자찬하고요.
그런 만큼 비난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되는 만큼 자신을 추스르고 일으키려는 카렌의 노력은 그런 점에서 엄청나게 똑똑한 일이고, 그러니 상담을 받는 나와, 나의 내담자들도 얼마나 똑똑한지! 하며 읽는 동안 덩달아 신이 났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고통 속에 있어서 볼 수 없고, 그래서 당장은 알 수 없다 해도 어떤 과정에서 겪는 경험 자체로 성장해가는 것 같습니다.
카렌은 종교적인 경험이나, 심리적인 고통 말고도, 재정적, 학문적인 면에서도 끊임없이 '바로 앞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경험을 거듭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야 할 방향으로 다른 문이 열린 기회였다고,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진정한 이야기는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내 안에서 야금야금 펼쳐지고 있었다."
'빛을 향해 한 걸음' 중에서
그 마음의 결정이,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서로 적대하고 배척하는 종교들을 헤아리고 '신의 역사'를 써보고 싶은 호기심과 열의를 갖게 한 것 같습니다.
Ⅱ. 시대와 함께, 사람과 함께
책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1970년대 초 서구사회는 남성우월주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 백인 지배 논리를 무너뜨리고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기 시작하고 쟁취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무르익는 때였습니다.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서 킹으로 대변되는 자유와 평등 정신이 유럽으로 펼쳐질 무렵이던 것과 맞물려서, 종교인으로서 신에게 의존하며 살던 카렌의 마음이 격동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또한 1970년대에,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종교전쟁과 신앙 갈등, 종교지도자가 장악한 중동 국가, 그리고 1979년에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이른바 도덕적 다수 운동 이후 신앙의 중요성이 대두된 변화 등은 카렌이 세속적으로 살면서 종교에 몸담았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고도 불안한 반쪽짜리 자유를 느끼던 개인적인 경험과, 어차피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바에야 대놓고 종교의 힘에 기대고자 하는 불완전한 세계의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카렌은 그러한 변화들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신앙의 이름으로 존재의 인격이 가두어지는 경험을 더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돌고 돌아 어느 순간, 드디어 카렌은 신과 나, 그 관계에서 찾던 무한함을 놓아버리고, 인간답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많은 한계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들뿐이라 해도 그것을 여러 삶의 조건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의 모든 인격이 어떤 식으로든 결부된 아주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반응, 안과 밖이 조금도 겉돌지 않고 하나로 맞물렸다.
… 내가 생사의 투쟁에서 맥없이 물러난 게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조건과 세상살이의 진실과 우연히 맞닥뜨린 것이라는 사실."
p. 249
Ⅲ. 몸에 밴 권세
내가 믿고 의지하려는 게 신이든, 학문이든, 사람이든, 나는 한계가 있으니, 대상은 한계가 없기를 바라게 됩니다.
물론 머리로야, 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계가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신이나, 부모나, 진리에 눈뜨게 해줄 거라 기대되는 어떤 분야의 학문이나, 정치적 이념이나, 심지어 돈도, 때로는 사랑에 눈멀게 된 사람까지- 우리는 자신에 대해 느끼는 한정만큼이나 대상은 무한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지요.
그러나 불멸을 찾겠다는 희망조차 놓을 때 비로소 '나'로서의 통제감을 되찾게 되었다는 카렌의 기록을 읽고 있자니, 깨어있는 일상 의식의 바로 밑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공포, 즉 내가 지배받고 있고 통제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결국 모든 것은 '그'의 뜻에 달려있다는 인식이 '내맡김'이 아니라 '두려움'과 '속박'을 더 많이 지어내게 되는 이치를 인정하고, 이제 그만 '바늘도 안 달린 재봉틀을 몇 시간씩 돌리는 짓'을 그만하자고 권하는 듯한 그의 말에 나도 귀 기울이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또한, 모든 종교가 강조하듯, 다른 존재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는 것이 믿음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저 자신의 길을 가면서 침묵하고, 실천하며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참다운 신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렌은 그런 경험의 끝에, 세상의 다양한 종교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선의를 받아들이고 서로 어우러지도록 돕는데 남은 생을 다 하기로 마음먹고, 교육과 강의에 힘쓰고 있습니다.
역자는 이 책의 원제 나선형 계단(The spiral staircase)을 어째서 '마음의 진보'라고 번역했을까요? 삶의 진보, 또는 영혼의 진보도 아니고 말이지요.
삶은 결국 과정 자체이고 영혼이란 성장도 쇠퇴도 없지만, 마음은 살아가는 내내 놀이나 게임처럼 얼마든지 자신을 속이고, 꾸미고, 혼란을 지어내는 변화무쌍한 것이라서, 어쩌면 놀이마당을 펴놓고 그 위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진보해야 하는 것도 결국 마음이려니, 성장이란 한시름 놓고 나아지는듯하다가도 원점으로 돌아온 듯 좌절하지만 전보다 한 계단 올라서고 있음을 믿는 마음에서 진보를 이루는 것이려니… 제멋대로 짐작해 보았습니다.
카렌은 책에서 T.S. 엘리엇의 시구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 시간은 늘 시간이고 자리는 자리일 뿐,
저 별들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고
하늘은 텅 비어 있다."
T.S. 엘리엇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신성한 차원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거기에는 물론 사람들도 포함된다.)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
"그토록 찾아 헤맸던 신도 결국은 뇌가 고장 나서, 신경에 문제가 있어서 본 것이었다니…"
뇌전증이 있어서 발작 증세가 간간이 생겼던 걸 몰랐던 카렌은 첫 간질발작을 일으키던 순간에 어떤 '신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을 이렇게 한탄합니다.
카렌이 종교에 깊게 귀의했다가 나온 것이나, 그의 동생이 배우 생활을 접고 일본 종교의 열렬한 신도가 된 것도, 뇌전증을 앓는 사람이 종교의식이나 신앙에 깊이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에 빗대어 볼 때, 카렌 집안에 어떤 가족력이 있었거나 유전적 기질의 영향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