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죽음을 품은 삶

by 하계의 이난나



모처럼 겨울 휴가 삼아 경주 산내골에 있는 생태캠프에 와있습니다.


한 열흘 여기서 지내며 산공기를 벗 삼아, 오래 걷고 소박하게 먹고 졸리면 자면서 지내려고 해요.

그리고 가져온 책, 공지영 씨의 산문집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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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오래도록 붙어있는 습관이 몇 있는데, 그중 유난한 건 누군가 혼자 있는 게 눈에 띄면 마음이 쓰이는 거예요.


비 오는 날 산책길에 만난 새 한 마리, 호젓한 산길에서 나를 만나 놀라서 후다닥, 눈길을 뛰어가는 길고양이, 인적 드문 산골 농막에 혼자 묶여서 사는 개.


직업병인 건지, 하다못해 참가한 캠프에서 늘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뚱해있는 어떤 사람까지 괜스레 마음이 쓰이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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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산문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작가가 나름대로 추구했던 세상에 대한 참여 방식이 뜻하지 않은 상처와 고통으로 부딪치던 이야기가 숨어있어요.


숨어있다는 말은, 작가가 대놓고 나 힘들었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길의 끝이라 여기는 곳에 섰을 때, 몸을 돌려 자신 안의 신을 대면하기 위해 예루살렘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신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게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가끔은 존재를 찢는듯한 고통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대신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그가 망가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지금 너는 어디로 가느냐? 에서



저도 지금 변화의 시점에 와있어요.


살면서 자주,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고 꽤 많이 바꿔왔다고 여겼지만, 그러나 몸은, 정직하게도 내가 남을 돌보기에 최적화된 사람인 양 여기며, 어쩌면 나 자신조차 속이고서 좋은 사람으로,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얼굴을 하고 사는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쓰러진 예수는 그렇게 일어났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죽으러 가기 위해 기필코, 십자가 위에서 죽기 위해서.

비아 돌로로사



작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흉내 낼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을 스스로 맞이하는 예수의 모습을 이렇게 썼지만 저는 이 문장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으러 가는 우리가 실은 모두 겪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이는 하나, 예수는 알고도 나아가시고 우리는, 아니 나는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고통을 느낄까 두려워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작가의 말마따나 고통이 실은 내가 걸려있는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 알려주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44582248625.20231212091305.jpg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혼자 있는 짐승들이나, 혼자 겉도는 어떤 사람은 내가 스스로 소외시켜왔던 내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나는 나를 홀로 두지 않고 챙기고, 더 아끼고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책을 소개하고, 선물해 주신 사랑하는 선생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겨울비가 오네요, 곧 봄도 오겠지요?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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