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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다 May 02. 2023

손편지-추억셋

백일동안 사랑했었지-3

1998. 1.28. 수요일


맑게 개인 하늘 위로 뜨겁게 떠오로는 태양이 예전의 어둠을 몰아내고

음력 새해 첫날의 분위기를 따사롭게 비춰주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는

어두운 과거보다는 우울한 추억보다는 밝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새롭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하며, 보람되고 뜻있는

학창 생활을 이루며,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명절이 되면 그렇듯이 오늘도 예외 없이 우리 집은 많은 친척들로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하루 새해 첫날을 보냈습니다.


사촌 매형이나 매제까지 포함해 사십여 명이 한집에 모여 있었으니

얼마나 요란했겠는지 상상이 되지요?


아침에 차례를 지낸 후 세배를 했는데, 역시 IMF 한파가 세뱃돈에도

생기더군요.


물론 직장을 다니는 저는 세뱃돈이 없지만, 사촌 동생들은 경제의 어려움을

작년과 다른 세뱃돈에서 느껴야만 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집은 사촌들이 너무 많아 세뱃돈을 쪼개다 보면 얼마 되지도

않지만 말이죠.


식사 후에는 모두 방에 모여 윷놀이를 하다가 세대별로 나뉘어 놀았는데,

물론 저와 같은 세대는 서양화인 포커를 하다가 오후에 매형이 와 저녁에

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고스톱을 했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모은 돈으로 여러 명이 볼링장을 갔는데, 끝나고 노래방에

가기로 했는데, 난 과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친구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과친구들이 몹시 화가 나 있더라고요.


내려와서 연락도 안 하고, 연락을 해도 연결이 되지 못했다고요.

항상 재미있게 노는 친구들이라 내려가면 다른 친구들보다 자주

만나는 사이지만, 지난 신정 때도 만나지 않았거든요.


이 친구들하고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바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새벽에 매형이랑 사촌동생이 자동차로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거든요.


앞으로 두 시간 정도 있으면 출발할 것 같아요.


이번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많은 얘기를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커져만 가는 걸

감출 수가 없더군요.










내가 곧 서울로 올라간다고 해도 사랑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당신이 지금 어는 곳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허탈함이 고향 집을

곧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보다 더 크게 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따뜻함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울타리만으로 얼어붙어 있는 제 마음과 차가운 바람 속에 서 있는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네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좀 더 강한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보면,

자꾸만 약해지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도 지금 고향에 있다면 가족들의 따뜻함과 사랑 뜸뿍 받아서 오세요.


내일부터는 서울에서 다시 당신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셨길 바라요.


그럼 서울에서 또 쓸게요.


안녕!


-따뜻한 고향의 품을 그리워하듯 당신을 그리며-


-전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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