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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다 Feb 14. 2023

내 곁의 고마운 사람들.

여기는 국밥집

기회?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고마운 분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20년 1월. 온 세상을 강타한 바이러스 탓을 하며 무지함의 극치를 보였다. 그 무지함을 무기 삼아 바이러스 뒤로 숨어버린 이가 있었다. 그런 한심한 사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멋진 분들이 있다. 의기투합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을 바꿔 준 분들이다. 한 가정의 가장인 어머니들을 대변해서 정말이지 몸을 아끼지 않으시며 손님을 바라봐 주신다. 코로나로 1년을 채 버티지 못한 채, 폐업하기로 한 사장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번화가 상권이라 한 달 월세는 500만 원이었다. 힘든 시기에 한 달에 500만 원을 어찌 그냥 버릴 수 있냐며, 두 분의 직원은 의기투합하였다. 아프면 쉬란다. 그러다 괜찮아지면 다시 나오면 된단다. 둘이 장사하고 있겠다며 감동의 눈물을 짓는 이들의 이름은 다름 아닌 “직원”이었다.     


무지한 한 사람을 인간답게 바꾸어 준 위대한 분들이 참으로 감사하다. 다행히도 그렇게 다시 김밥을 붙잡고 있었다. 다시 시작한 가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한껏 즐기며 산타 모자를 썼다. 김밥을 드시는 손님들과는  마음으로 통했다. 감동의 눈물은 끝난 게 아니었다. 2호점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사모님 고백할 게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2호점 최고봉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5년째 단골로 오는 70이 훌쩍 넘어 신 어르신을 기억하시냐며 묻는다.

“물론 기억하다마다요! 그 어르신이 왜요?”

“하루에 두 번 오시던 분이 요즘 3~4번이나 오시네요. 치매 초기증상으로 기억을 못 하세요. 분명 아침 드시고 가셨는데, 금세 또 드시러 오세요. 아침에 식사하고 계산할 때 분명 지갑에 현금 30만 원 정도가 있었는데 다시 오실 때는 텅 빈 지갑이더라고요.”


어르신은 혼자 사시는 분이라 매번 물냉면만 드시는 것이 걱정되어, 돈가스를 잘게 잘라 서비스로 끼니때마다 내어 드리고 있다고 말을 한다.     

“사모님께 고백합니다. 돈가스 내어 드리지 말라고 하면 그만하겠습니다.”

너무도 감사해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골에 홀로 계시는 엄마 생각도 나기에 말이다.

                              

“언니. 감사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그 어르신께 정성을 다해 주세요.”

가게의 최고봉이신 이분은 김밥집을 시작할 당시부터 함께 해온 오픈 멤버이기에 척하면 척하고 마음이 통한다. 내가 무조건 믿고 보는 분이시다.

“그리고, 따님께 연락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 김밥집 오픈 당시부터 단골이신 어르신은 참 건강하셨다. 손님께서 따님이 대기업 과장 이라며 명함을 보이며 자랑을 하신 적을 기억한다. 자랑스러운 딸이 용돈도 넉넉히 주신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 나이가 몇 인 줄 알아?”

그때의 그 활달하고 당당하신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측은지심이 발동케 하는 세월의 무심함을 알게 하시는 분이다.

“안됩니다. 그러면 따님께서 용돈 안 주신다며, 연락을 못하게 하십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아 마음이 이내 아프다.  

   

마음이 찡한 사연을 듣고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고백을 통한 훈훈한 김밥 이야기를 선사해 준 주신 감사의 이야기를 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 다. 블로그에 그 흔적을 적었다. 살만한 세상의 이야기는 릴레이가 되어 돌아왔다.     


코로나시기 힘듦을 이겨 내고자, 함께 공부해 오신 분께서 어르신께 드리라며 인삼 열매차를 선물로 놓고 가신다. 주메뉴 이외의 반찬들을 잘 안 드시는 입 짧은 손님이다. 물론 음료도 어지간해서는 드시지 않는다. 까다로운 입맛 덕에 국물도 안 드시는 분이다. 아무튼 작전을 잘 짜야 손님께서 인삼 열매차를 드실 수 있다. 사모님께서 직접 끓여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 셨단다. 졸지에 인삼 열매차까지 끓이게 되었다.


성공!


“손님 환하게 웃는 모습 처음 뵙니다.”              


8년 동안 해 오던 일은 김밥 싸는 일이었다. 습관처럼 해오며 가족을 길바닥에서 구해준 고마 운 친구 같은 김밥을 이제는 더 이상 말아서는 안 된다.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저리고 붓고 저려온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최고봉 직원도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오랜 기간  가락시장에서 일하여 왔다.

작년여름 과일 싣는 트랙터에 손가락을 다치며 더 이상 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되던 김밥집 문을 닫으며 실망감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라 코로나주사를 이제야 맞았다. 버텨낼 제간이 없었다. 두 달 가까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만 자며 지냈다. 마지막 남은 가게마저도 이제는 문을 닫아야 할 순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허망함을 남편은 견뎌내지 못한 듯하였다.     

방법이 없을까?


잠시 쉬며 나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6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그 허망함에 블로그에 남겨진  손님들 응원의 댓글을 읽어 본다.

“아침에 통새우 김밥 자주 먹었는데, 이제 못 먹다니요? 다시 돌아오실 건가요?” ”흐앙, 사장님!

“묵참김 먹고 싶어서 며칠 갔다가 문 닫으셨길래 서치 하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푹~~ 쉬시 고 돌아오셔서 다시 맛있는 김밥 팔아주세요.”

“블로그 운영하시는 거 보니 본인만의 철학도 있고 멋지신 분 같아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족한 인원에 밀려드는 손님, 마지막, 시원섭섭한 그 마음. 겪으신 모든 일에 대한 그 감정 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저도 겪었던 또 겪고 있는 일이니까요!”

자영업자들에 친구 같은 이 녀석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


부산여행에서의 추억은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돼지국밥을 먹기 위해 들어선다.

원조 돼지국밥인 부산에서 국내산 고기국밥을 먹어야 했다. 수입산 항생제 덕분에 두드러기를 피해야 했다.

몇 군데를 다녀보지만 쉽지는 않았다. 못내 아쉬워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았다.


나는 다시금 무모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김밥집으로 바쁠 땐 순댓국 포장해 놓고 아이들 식사를 책임지던 바로 그 국밥 한 그릇.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순댓국이 그렇게 다가왔다.     

서툴지만 따뜻한 국밥으로 손님께 내어 드리겠노라고 다짐했다. 건강이 보내온 신호 때문에 또다시 기회가 되었다.


오픈첫날!

아이들은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떡을 연속 이틀 두말을 준비했다. 지인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멀리 지방에 있는 친구들까지 발걸음을 하였다.

    

8년 전 오늘이 다시금 떠오르는 날이었다. 오늘을 꼭 기억하자.

나는 리얼프로다. 내가 상상하는 그날이 온다. 소주도 일품진로가 있다. 순대국밥도 일품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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