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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담다 Feb 23. 2023

몸부림치는 하우스푸어


하우스 푸어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내가 느꼈던  그 겨울의 온도였다. 빚더미에 나뒹굴어 진흙탕이 된 나는 뭐가 됐든 시작해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당 아르바이트가 다였다. 집 근처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았다. 40대 아줌마를 써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면접을 보았다.


내 나이 마흔셋!


난생처음으로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가 있는 천안으로 이사 가는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아들사랑은 우리를 붙잡았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무모한 사랑은 우리 가족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아팠던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학교등교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등하교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 나에겐 찾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기에 김밥집 아르바이트는 꼭 필요한 일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다. 김밥집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 김밥집 아르바이트는 주말에만 할 수 있었다. 11시부터 2시까지 바쁜 시간 김밥을 싸는 일이었다. 김밥 싸는 일은 아이들 소풍 때 집에서 싸본 게 다였다.


차분히 김밥 싸는 일을 배우며 주말아르바이트는 시작되었다. 한 달이 지나자 매출이 감소해서 더 이상 내가 필요치 않다고 했다. 간신히 붙었던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나에게서 멀어졌다.


또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집 앞 터미널 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이력서를 내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국숫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2015년 아르바이트 최저시급은 5,580원이었다. 국숫집에서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 2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이다. 아이의 병원비에 보탤 수 있었다. 집 앞이라 교통비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60만 원 전부를 가져올 수 있었다. 


터미널 국숫집 손님은 만원이었다. 3분 이내로 손님은 들고 났다. 국숫집 사장님이 너무나 부러웠다. 

비빔국수 소스를 직접 만드는 걸 도왔다. 내키만큼 큼직 막한 국자로 국수소스를 젓는다. 난생처음 보는 소스들과 일본어로 적힌 양념들을 조합했다. 


분리수거하러 가는 길에 소스통이며 양념통을 찍고 기록해 나갔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밤 8시까지였지만 손님이 많은 날은 갑작스럽게 사장님은 외친다. 오늘 연장이에요!


마감시간은 9시였다. 연장 한 시간은 나에게 꿀이었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열심히 한 덕분에 앞집 토스트 가게 사장님과 친해졌다. 식당 알바초보는 토스트사장님 제안에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토스트집 인수를 제안해 왔다. 권리금 1억 5천!


빛밖에 없는 나에게 권리금 1억 5천이 가당치나 하단 말인가!


미친 하우스 푸어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잘못된 욕망의 끝은 누가 봐도 예견되어 있건만, 무모한 욕망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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