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꽤 많이 아프더라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약 2년의 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남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다.
어제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근데 진짜 어제저녁에 뭐 먹었지?
다만 조금씩 생각나는 건 '어릴 때 이런 감정을 느꼈지.'같은 다 휘발되고 남은 아주 미세한 감정의 파편 같은 것들? 아니면 화면만 어슴프레 비치는데 사운드가 하나도 안 들리는 어떤 씬 같은?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나는 학창 시절에 잠깐 은따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적이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반을 아우르는 한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척당했다. 주동자는 나를 따로 불러 내 말투와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내 말투와 목소리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어쨌거나 학기가 끝나갈 무렵 모두와 돌려쓰는 롤링페이퍼를 통해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받긴 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들과 함께. 그리고 한 구석에 나를 따시켰던 주동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잘 살아라'도 기억이 난다. 물론 드문드문 기억의 파편을 연결하면 이 정도까지만 기억이 난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내가 주동자보단 꽤나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엔 변함이 없어서... 하핫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지금은 이십 년도 넘게 절친인 친구에게도 문득 물어본다.
"야, 우리 중학교 몇 학년 때부터 친구였어?" 혹은 "우리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나?"
뭐, 이런저런 정황상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선 본능적으로, 그 시기 통째로 기억을 잠그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나더라도 그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 척 거짓을 말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한다. 내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신경 쓰는 데에 빠삭했으므로. 나는 예민한 아빠를 닮은 건지,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인지 그것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내 선택적 기억력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나중에 치매만 안 오면 다행이다.
아무튼,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옆 팀의 대리님과는 업무 내용과 부서가 달랐기 때문에 비록 내가 직급은 더 높았으나 내게는 쿨내가 진동하는 언니이자 인생의 선배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큰 거부감 없이 대리님을 통해 병원을 소개받았다.
그때 알았다. 신경정신과는 상담 위주의 병원도 있고, 내과나 이비인후과처럼 증상을 확인하고 약을 처방받는 병원도 있다는 것을. 대중매체를 통해 엿본 신경정신과는 언제나 푹신한 소파에 의사 선생님과 내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상담을 장시간 나눈 후 약을 받아 나오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내가 소개로 간 병원은 후자였다. 약간의 상담과 처방으로 꽤나 회전율이 빠른 곳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내 이야기를 꽤 길게 들어주셨다. 이전에 신경과에서 피가 토하듯 강조했던 시야가 쏟아지는듯한 증상도, 자려고 침대에만 누우면 침대가 흔들흔들 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 그리고 지금 상담을 받기 위해 선생님과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가 앉은 무거운 의자가 흔들거린다는 것까지.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율 신경계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 증상이 발생하는데 보통 이런 증상의 원인은 과도한 음주 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라고.
일주일에 술을 얼마나 마시냐는 질문에 나는 '주말마다 본가에 가서 엄마랑 작은 맥주 한 캔씩 하는 게 거의 대부분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 대답을 경청하시던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음주가 문제는 아닐 테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문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낯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적은 용량의 약물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너만 괜찮으면 약물 치료를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나는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의사 선생님도, 나도 며칠간 약물 치료를 하면 침대가 흔들리고 골이 당기듯 욱신거리며 침대가, 책상이 흔들리는 느낌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건 마치 병원 안에 내 정신병을 소환하는 마법진을 그리는 행위였던 것 같다. 약물치료가 시작되며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놨던 모든 나쁜 감정을 다 끄집어냄을 당하는듯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침대가 흔들리는 감각은 정말 별 게 아니었구나. 내 안에는 더 험한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구나.
그래도 의사 선생님을 계속 신뢰할 수 있었던 건 약에 의존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내 의지를 의사 선생님 또한 적극 동감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격주로 병원에 내원해 나와 잘 맞는 약의 조합을 찾아나가며 이런저런 과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에겐 꽤나 두터운 라포가 생겨났다.
의사 선생님이 어느 날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기질적으로 예민한 성향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스트레스를 피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참 어려운 말이었다. 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여쭈었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냥 직장에 다니는 거잖아요. 수기님의 지분이 그 회사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회사라는 공간에 수기님 자신을 너무 갈아 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 생각했다.
어쩌면 나, 꽤 열심히 살아왔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