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진료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때요?

억지로 맞춰두었던 댐이 기어이 틈을 비집고 와르르 무너질 때

by 수기

그 당시의 나는 겁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힘들고 지치는 감정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감정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버텨내던 평범한 직장인.

몇 년 전의 일이라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는 직장 내 괴롭힘 비슷한 걸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건 퇴사를 결심한 직후에 알았다. 그전까진 그냥 '아, 저 윗놈 짜식. 들이받고 싶게 만드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녔기에.

그리고 실제로 참 많이도 들이받긴 했다. 하하.

그전부터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너는 왜 자꾸 다니는 회사마다 그런 빌런들을 만나?'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내 인생의 복선 비슷한 것이었을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디나 다 있는 도라이들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친구들은 고개를 저었다.


나름 평범한 직장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 내 몸이 조금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몸을 억지로 잡아 누르듯 내 시야가 사무실 바닥으로 확 처박히는듯한 착각 같은 어지럼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여전히 모니터를 향한 채 책상 앞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거기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증상이 추가됐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뒤통수 한 부분이 당기듯 욱신거렸다. 뒷골이 당긴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문득 생각했다. 업무 협의를 하는 내내 뒤통수를 연신 꾸욱 눌러대는 게 일상이 될 무렵,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신경과에 갔다.


"아니, 제가요. 책상 앞에 멀쩡하게 앉아있는데요. 갑자기 시야가 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처럼 와락 바닥이 쏟아지듯 보였다니까요?"

내 억울함 가득한 호소는 의사 선생님에게 닿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대체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냐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앉아있는데 고개가 떨어졌다고요?"라고 물으셨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뇨, 저는 멀쩡히 앉아있는데 시야만 바닥으로 쏟아지듯 바닥이 확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내 표현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의사 선생님의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끝내 한 점으로 모이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도저히 너의 개똥 같은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여러 가지 검사를 시켰다. 뇌파에 관련된 다양한 검사들이었는데, 몇 시간을 병원에 갇혀서 생각지 못한 검사비까지 결제를 하고 나니 의사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편두통이네요. 검사 결과들은 다 정상이에요."

그게 다였다.

사흘 치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되도록 커피를 마시지 말 것,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있으니 절대 안 됨. 이것도, 저것도 먹지 말고, 이런 것 위주의 식사를 할 것, 같은 이야기만 잔뜩 듣고 결국 진짜로 내가 궁금했던 내 증상의 원인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원인 불명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안 받나요?"

끝까지 나와 의사 선생님은 창과 방패처럼 대립했다.

그리고 병원을 나와 이만큼 결제된 카드 영수증을 물끄러미 보다가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생각했다.

당 땡긴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 사들고 갈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 당시 내가 그런 증상을 겪었구나 했던 게 희미해질 무렵이었다.

백살도 넘게 내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외할머니가 암 투병 중 돌아가시고, 사십구재 직후 코로나 감염으로 자가격리를 하고. 회사가 아니더라도 안팎으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침대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딱 그즈음이 내가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을 무렵이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층에 살면 강한 바람에 집이 미세하게 흔들릴 수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평생을 저층에 살았던 나는 꽤나 뇌가 순수한 사람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살았던 오피스텔은 건물의 최고층이었기에 '그치, 바람이 세게 불면 살짝 흔들릴 수 있겠지.' 생각하며 침대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느낌을 단순히 고층에 살고 있기 때문으로 치부하며 살았다.


물론 친구들은 뭔 고층에 산다고 집이 흔들리냐며 지금 네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걱정 어린 말투로) 뼈를 때려댔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진짜로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모르는 척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침대가 흔들거리는 느낌이 사무실 책상까지 따라와 번질 즈음 친하게 지내던 옆 팀 대리님이 내게 진지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과장님, 혹시 신경정신과 진료를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어때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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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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