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나 내 편
약물치료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실 정신적인 문제가 확 터져버린 건 직장생활이 계기는 맞지만 많이 예민하고, 눈치 보는 게 일상이고, 그래서 깊은 잠도 못 자던 유년기를 겪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회사가 결정적인 계기임을 설명해도 엄마는 마음 아파할 것이었다. 그리고 신입사원 시절 직장생활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회사생활이 다 그런 거지!"로 무섭게 내 입을 막던 아빠가 어떻게 생각할 지도 무서웠다.
어느 날 문득 상담 중 의사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었다.
"혹시 제가 지금 이렇게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좋을까요?"
의사 선생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에게 알려서 치료에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던 적이 거의 없으셨다고 한다. 제가 수기님이라면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만약이란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본사를 통해 휴직이 허가가 난다면.
아무리 다른 지역에서 따로 살고 있는 자녀라 하더라도 특히 나를 너무 잘 아는 엄마는, 전화통화 몇 마디로도 내 상태를 빤하게 알아채는 엄마는 내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챌 것이었다.
엄마에게만이라도 내 상태를 알려야 했다. 오래 간직해야 할 거짓말이 싫은 내 이기심으로 나는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로 한다.
사실 치료 중 본가에 자주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나는 만성 비염약인 것처럼 엄마와 아빠의 눈을 속였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약 봉투들을 긁어모아 거기 쓰인 약물명만 검색해도 이게 만성 비염약이 아닌 것쯤은 알았을 테지만 엄마와 아빠는 환절기인지라 내가 단순히 비염 치료를 받는 줄 알았다. 비염은 어릴 적부터 달고 살던 내 인생의 동반자였기 때문에.
본가에 내려가 타이밍을 본 후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사실은 회사 생활로 인해 신경정신과를 통해 약물 치료 중이고, 의사 선생님을 통해 휴직 얘기도 나왔다고. 만약에 휴직 허가가 나면 내가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게 어려워서 그냥 미리 얘기하는 거라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엄마는 내 예상만큼이나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회사에서 휴직에 대해 반려 처리를 하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라며 엄마가 걱정할 것을 걱정해 더 힘들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말에 신이 났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사실 가끔 엄마가 나한테 '으이구, 너 유난이야.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일도 아닌데.' 하는 식으로 말하면 그게 날 혼내는 말이 아니고 장난처럼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 상처받은 적 있어." 하고 말했더랬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쬐금 이상했다.
"너 예민한 거 아니까 걱정돼서 그렇게 말한걸, 또 그게 마음의 상처였다고 말하면 내가 이제 너한테 무슨 말을 하니!" 하고 왈칵 화를 내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워낙 오래 아팠으니 엄마의 장난 같은 걱정에 '이성적인 나'는 그게 걱정이라는 걸 명확하게 아는데, '비이성적이어서 아픈 상태의 나'는 예민이나 유난이라는 말에 종종 마음을 다쳤다고 해명을 했음에도 결론적으로 엄마와 나, 우리 둘은 각자의 생각 안에서 감정이 상해버렸다.
사실 내가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상황이 원활하게 풀린 줄 알았던 나는 당황스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괜히 말했다, 엄마 화 풀리면 그때 다시 대화하자'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화가 난 건 엄마가 아닌 나였던 것도 같다.
그러다 이 상황을 카톡으로 들은 친한 언니의 말이 내 정신을 깨웠다.
'아마 어머님이 티는 내지 않으셨지만 너의 상황이 어머님이 생각하신 것보다 더 심해서 많이 놀라셨던 것 같아. 그래서 네 상태에 내심 속상할 정도로 놀랐는데 뒤이은 말에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섞여서 왈칵 화를 내시듯 말씀하신 것 같아.'
친한 언니가 한편으로는 어머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며 나를 달랬다. 오랜 시간 내 속 이야기를 들어왔던 언니는 너희 어머니라면 대화가 안 되는 꽉 막힌 어른도 아니니, 둘 다 감정을 좀 정리한 후 침착하게 대화를 잘 풀어보면 서로 오해하고 걱정하던 마음들이 잘 풀어질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 줬다.
언니와의 짧은 카톡을 마무리한 후 방문을 닫고 새벽까지 훌쩍거리며 어떡하지 싶은 마음을 정리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젤다의 전설에 미쳐있었다.) 엄마가 슬쩍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금 더듬듯 엄마가 물었다. "공황... 그런 거야?" 그 질문부터 눈물이 다시 찔끔찔끔 나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에서 의사 선생님의 진단서를 꺼내 엄마에게 보여줬고, 그때부턴 나의 일방적인 오열파티가 시작되었다.
정신병이 생긴 딸을 두게 해서 미안하고, 아까 엄마한테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엉엉 울면서 툭툭 끊어지듯 이어지지 않는 말들을 주워섬기며 주절 주절댔다.
살면서 가족 앞에서 오열을 하고 큰소리로 내 감정을 말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이 거의 처음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나는 엄마를 옆에 두고 새벽동안 엉엉 울었다.
잠자던 아빠가 내 오열소리에 무슨 일이냐며 당황한 얼굴로 방문 앞에 머쓱하게 서있는 걸 엄마가 손짓으로 휙휙 하면서 보내고, 엄마는 열심히 나를 달래주... 지 못했다.
참고로 본가의 서열 1위인 우리 집 강아지는 가족들끼리 스킨십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가족들의 손은 자기만 만져줘야 하는 도구쯤으로 아는 이기적인 강아지였다. 거기다 가족들이 우는 것에 굉장히 예민했다. 그래서 내 울음으로 불안을 느낀 강아지가 새벽에 별안간 짖으며 난리를 칠까 봐 엄마는 몰래 내 등에 따뜻한 손만 얹어줬다. 몰래몰래 등을 쓸어주는 엄마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던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나한테 아까 별 말을 못 하겠다고, 허엉, 그렇게 말한 거 사과해줘어어어어엉!" 하면서 투정을 부렸더니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내게 사과했다.
"자식이 여럿이니 다들 어떻게 말해도 서운하다 하니까 그게 섭섭하던 차에 네가 말한 병증도 충격이었고 당황스러움에 말이 헛나왔다"며 사과하기에 "아니, 유난이라고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아픈 내가 가끔 그 말이 힘들어서 말했던거야아아아어어어엉!"하고 울었더니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안다고, 서로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않았냐며 묻길래 나는 또 오열을 하며 "그럼 이제 화해해. 악수해허어어어어엉." 하고 손을 내미니 엄마가 손을 잡아줬다. 엄마는 '수기를 안아주기'를 시도했지만 지밖에 모르는 강아지의 으르렁으로 인해 모녀의 위로 목적의 포옹은 실패로 끝났다.
엄마는 엉엉 울며 미안하다고 하는 나를 보며 왜 계속 아픈걸 미안하다 사과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든든한 딸도 되지 못하고, 정신병 걸린 딸인 것도 미안하고, 못난 딸인 것도 미안하다며 계속 울어댔다. 묵묵히 듣던 엄마는 "음, 갖다 버려야겠네." 라며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풀어줬다.
한참을 훌쩍거리는 나를 보던 엄마는 나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는 한숨 같은 혼잣말을 하더니, 나더러 엄마가 있는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엄마 근처에 살면서 엄마 밥도 먹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일을 하던지, 휴식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쉬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단순한 제안 같지 않았다. 나를 위한 간곡한 부탁같이 들려 마음이 더 아렸다.
사실 제일 무서웠던 건 아빠의 반응이었다. 경기도 좋지 않아 이직이 쉽지 않은 이 시국에 정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잘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아빠가 뭐라 할까, 그런 것들이 가족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유였다.
그리고 엄마를 통해 들은 아빠의 반응은 생각보다 쿨했다.
놀란 아빠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에 대비해 엄마는 내 모든 병에 대해 다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기가, 회사 다니면서 우울증이 좀 생겼대. 그래서 치료를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요즘 많이 힘들다고, 그래서 지난밤에 울었던 거래.'라고 예쁘게 포장한 엄마가 열심히 둘러대자 아빠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 정도로 힘들면 그만둬야지 어쩌겠냐고 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금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아빠가 엄마를 통해 수기가 너무 힘들어하면 바로 그만두라고 얘기하라고 당부했다는 말을 들은 건 한참 후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다들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그래서 찔끔 눈물이 났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구나.
그래서 서울에 돌아와 문득 엄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엄마가 없었으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어서 또 혼자 찔끔 울었다. 그러다가 내가 없을 때 나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루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 엄마를 상상하며 또 혼자서 울었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토로하면 다 괜찮다고 말해준다.
얼마를 쉬어도 괜찮고, 돈은 있다가도 없는데 없다가도 생기는 거니까.
백세시대라고 일컫는 이런 길고 긴 인생에 잠깐 무릎 통통 두드리며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한 건데, 지금의 너는 잠깐 휴식이 필요한 시기인 거야.
네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 걸 엄마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엄마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며 엄마는 오늘도 내 걱정을 안으로 숨긴다.
그게 미안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참 이상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