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병가를 얻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2주

by 수기

이런저런 개꼴을 다 보고, 결국 내 휴직계는 본사의 인사팀으로 넘어가 며칠 후 본사의 인사총괄 본부장님의 면담제안이 메시지를 통해 왔다. 지난번의 청문회 같은 면담은 사실상 본사로 넘기기 직전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 눈앞에 앉은 이 본사 윗사람이 내 휴직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혹시 원흉들이 내 사유서를 수정해서 본사에 올렸을까 봐 나는 기안을 상신할 때 사유서를 pdf 파일로 변환하는 치밀함과 원본을 인쇄해 가는 얍삽한 준비력을 뽐냈다.

(알고 있다, pdf 파일도 수정 가능하다는 걸.)


다행히 내 직장생활의 원흉 1과 2는 머리가 나쁜 건지, 별 소득 없겠다 싶은 건지 기안을 상신할 때 첨부한 파일들 원본 그대로를 본사에 제출했더라.

우리는 카페에 나란히 앉았다. 본사의 인사총괄 본부장은 애써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기 과장님이 워낙 사유서를 잘 써주셔서 사실 따로 질문할 건 없고,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어요."

사실 내가 봐도 기승전결과 감정의 디테일과 강약조절조차 너무 완벽한 사유서였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반려시킬 휴직으로 이렇게 본사에서 면담까지 하자고 하네.'

원래 사내 규정은 병가부터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사규를 뛰어넘고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주치의는 6개월을 쉬어도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회사의 사정을 봐주며 더 짧은 기간을 불렀고, 그마저도 다른 팀원들이 하기 힘든 고정적인 월간 업무는 휴직 중에도 내가 처리하겠다 말했다.


내 사유서와 주치의의 소견서를 토대로 내게 2주의 병가만으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아마 본사에서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 넘는 직장인의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본사에서는 내 직장생활의 원흉 1과 2가 얼마나 무능한 사람들인지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본사까지 소문난 그들의 무능력이었다.


역시나 본사에서 오신 윗분은 마치 미리 외워온 대본을 읽는 것처럼 술술 준비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과장님의 상황은 잘 이해했다.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병가를 건너뛰고 휴직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어쩌고저쩌고.'

나는 다분히 [직장인의 은은한 미소 가면]을 쓴 채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래서 안된다는 말은 언제 하실 건가요.'


본사에서는 좀 이상한 제안을 하긴 했다. 어떤 제안인지는 여기다가 쓰지는 못하겠다. 내가 특정될 것 같다.(이미 굉장히 특정될만한 글들을 많이 쓰긴 했지만) 다만 지인들이 그 제안에 대해 듣고는 정말 괴랄하다는 반응들을 보였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휴직을 반려당했다. 이 회사에 공황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많고, 실제로 공황장애로 인해 병가를 쓴 직원들도 많다. 하지만 그걸로 휴직을 허락한 사례는 없다고 했다.

말은 내 걱정 가득이었지만, 내가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으로 휴직을 사용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것을 본사에서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왜 우려하는지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렴풋이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렇게 별 의미 없는 티타임이 끝나고, 나는 2주의 병가를 신청했다. 그 사이에 나와 진한 동지애를 나누었던 우리 팀 사원은 퇴사를 하게 되었고, 2주의 병가 기간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칩거하며 책상을 조립하고, 집 정리를 하고, 쇼핑을 하고, 밤새 게임을 하고. 최대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래도 병가 이후의 삶이 고민스럽긴 했다. 그래서 툭하면 혼자 울었다. 때로는 엉엉 곡소리를 내며 울기도 했고,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나서 이유도 모른 채 조용히 울기도 했다.

(참고로 퇴사한 사원과는 지금도 인스타그램 친구로 더 극한 동지애를 나누며 잘 지내고 있다.)

엄마는 병가로 쉬고 있는 내가 병가의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것이 걱정인 것처럼 보였다.


우울증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이 직업과 잘 맞지 않는 걸까. 내가 회사에서 좋은 업무 성과를 내고 좋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노력했던 것들이 사실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이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를 가도 똑같은 이유로 고통받게 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여태껏 직장인이 된 이후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온 것이 나 자신의 자부심이자 부모님의 자부심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정신이 아파 한창 일을 해야 할 시기에 내 밥벌이도 못 하고 멍하니 처방된 약에 취해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내 인생 계획에는 없었다.


삶의 방향성이 흔들렸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상한 생각일 수 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살아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하겠는 삶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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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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