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중한 연차를?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엔 식사도 거르고 책상에 엎어져 잠만 잤고, 저녁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돌지도 않는 입맛에 굶는 날도 있었고, 이러다간 진짜 큰일 나겠다 싶은 날은 허기만 대충 때웠었다. 그런데 물만 마셔도 속이 울렁거리고 체기가 올라와 밤만 되면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꾸역꾸역 뭐라도 게워내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원래 다 쏟아내는 걸 잘 못하다 보니 억지로 게워내는 행위가 너무 고통스러워 변기 앞에 주저앉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변기를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다가 새벽에 겨우 침대에 기어들어가 잠드는 날들이 많았다.
거기다 여전히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매일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고정으로 내 출근을 도맡아주는 택시기사님까지 만났을 정도로 그냥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그마저도 택시에서 내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 양 무릎에 생긴 커다란 상처는 2년 넘게 아직도 새까만 흉터가 되어 남았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지쳐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신체 증상으로 나오는 신체화 증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내 성격이 어떻고, 내 성장시절이 어떻든 지금의 이 신체화 증상과 정신적인 증상 모두 회사로 인한 것이 확실하니 몇 달 쉬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업무에 대한 부분은 사실에 기반한 약간의 각색을 하도록 하겠다.)
그렇다고 그전부터 내가 나약하게 힘들다고 투정만 부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면담을 요청했다. 좋게 말해 면담이지, 그냥 내가 마구잡이로 들이받는 형태긴 했다. 그 이유는 우리 팀의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장급 인력 둘에 사원 하나. 심지어 우리 셋은 서로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담당자가 휴가라도 쓰는 날이면 그 사람이 급하게 필요한 요청이 발생했을 때 다른 팀원이 도와줄 수가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각자 맡은 업무가 너무 많은 탓도 있지만 애초에 우리 팀 자체가 간단히 설명하기엔 조금 많이 복잡한 사연을 가진 부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팀엔 서로의 업무를 대략이라도 아우르며 다방면으로 정리해 줄 수 있는 경력자가 필요했으나 내 요구에도 불구하고 본부장과 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신입사원만 여럿을 뽑아다 놨다. 그리고 나보고 가르치란다. 하루에 수십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고, 종일 전화로 업무 협의를 하다가 목소리가 걸걸해지고 그에 관련한 업무 메일만 이만큼씩 날아다니는 와중에 날마다 해야 하는 고정 업무까지 해도 나에겐 하루가 모자란데, 신입사원의 아주 사소하고 작은 실수 하나조차 곧 후배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 내 잘못이 되었다.
팀장에게 아무리 내 고충을 털어놓으며 우리 팀이 지금 너무 비정상적이니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말하고, 지금 우리에겐 신입이 필요하지 않다, 수습기간만 잘 정리하고 경력직을 새로 뽑아야 한다 아무리 말해도 '본부장 의지기 때문에 자기는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하는 팀장. 팀장 자리 앉는 대가로 수당도 (쥐꼬리겠지만) 더 받고, 그만큼 회사에서 대접도 해줄 텐데 자기는 힘이 없단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던 사원에게 자신의 귀찮은 업무를 떠맡기고, 구박하고 윽박지르고. 연차와 직급이 있는 나에게 못하는 걸 팀장은 그 친구에게 쉽게도 해댔다.
(근데 나는 부당하게 혼나는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나한테 그러면 본인만 피곤하다는 걸 팀장은 나와의 수많은 면담을 통해 알고 있는 것 같긴 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신입들에게 그 사원이 지시받은 팀장의 자잘한 업무를 너네가 대신 가져가고, 나눠서 도와주라고 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내가 그 사원한테 해줄 수 있는 상사로서의 배려였다. 사원이 내게 메신저로 감사하다 인사하는데 그조차도 미안해서 한숨만 나왔다. 우리 둘은 눈치껏 서로를 응원했다. 가끔은 눈치껏 둘이 도망 나와 커피라도 마시고 들어갔다.
본부장 면담이야 뭐. 똑같았다. 내가 고생하는 거 너무 잘 안다고 다독여주고는 뒤에선 내 욕을 하는 걸 정말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거기다 우리 팀장이 너무 무능한 게 이미 소문이 나서 내게 '장난으로라도 그만둔다는 말 하지 마시라'는 다른 팀 사람들의 간곡한 읍소도 내게는 부담이 됐다. 그럴 때마다 비상약을 꺼내서 탈탈 털어먹었다.
그 거지 같은 청문회를 빙자한 면담 이후였던가, 그전이었던가. 요건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본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말했었다.
일단 병가를 쓰라고. 내 연차를 붙이면 얼추 한 달은 될 텐데 그렇게 좀 쉬다 오라고.
공황장애, 그거 한 1~2주 쉬면 가라앉는 거 아니냐고.
어이가 없어 "제 연차를 다 써서 쉬다 오라는 말씀이시죠?"라고 되묻곤
본부장 앞에서 대놓고 좀 웃었던 것도 같다.
정말 머리끝까지 어이가 없어지면 되려 웃음이 나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