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회계사, Michel을 만나다.
어떤 평일 오후,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 JR의 개인전을 보러 갔다. 도시 공간에 개입하는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JR이 2023년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에 진행한 대규모 사진 작업과 퍼포먼스, 그와 연관된 여러 드로잉들을 볼 수 있었다. 보통 한가한 시간대인데도 페로탕(Perrotin) 갤러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 속에서 특히 시간을 들여 작품을 유심히 보던 한 파리지앵 회계사, Michel을 만났다.
JR의 개인전에 방문했던 그 오후. 기대를 안고 들어갔는데 전시장 1층의 흑백 드로잉들이 생각보다 난해했다. 큰 감흥이 없다 보니 1층을 다 보고 나자 피곤함이 밀려왔다. 2층으로 올라갔을 때는 앉아서 쉬고 싶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침 2층 전시장 구석의 검은 커튼이 보였다. 영상 상영관인가, 의자가 있나 싶어 무슨 작품인지 설명도 읽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쉬면서 영상을 보다 보니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진행됐던 퍼포먼스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 작품이었다.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준비 과정, JR의 기획 의도, 참여한 무용수들 그리고 화려했던 퍼포먼스 당시의 현장까지. 기대보다 흥미로운 작품에 어느새 온정신을 집중해서 작품을 봤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상영관 내의 의자뿐 아니라 바닥까지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저 사람들도 이 영상이 재미있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영상이 끝나고 열심히 작품에 집중하던 한 남자가 같이 상영실을 나왔다.
전시를 보는 템포가 비슷했는지, 영상을 본 후 보니 아예 다른 작품들처럼 흥미롭게 느껴져 전시를 다시 천천히 감상한 내 옆에 계속 그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이 전시의 어떤 부분들이 재밌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에게 잠시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 물었다.
미첼 하바로브(Michel Habarov)
미첼은 파리에서 태어난 찐 파리지앵으로 평생을 파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CPA 자격증이 있는 공인 회계사인 그는 비즈니스 분석과 비용 회계 분석을 한다고 한다. 그날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길이었다는 그는 왜 이 전시를 보러 왔을까?
오늘 전시를 보러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이 전시가 하는지는 몰랐어요.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길을 걷다가 페로탕 갤러리가 보이길래 들어왔죠.
페로탕 갤러리를 이미 알고 계셨던 건가요?
네, 맞아요. 페로탕 갤러리는 전부터 알고 있었고 여러 차례 와봤습니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작가 JR은 미리 알고 계셨나요?
아니에요. 전에는 JR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런데 위층에서 본 영상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JR의 작품이 굉장히 재밌고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는 그 퍼포먼스를 두 명의 다른 사람과 기획하고, 153명의 무용수들과 오페라 앞에서 실행했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영상 작품이 제일 재밌었던 작품인가요? 아니면 다른 작품이 있을까요?
네, 비디오가 제일 흥미로웠어요.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했는지, 음악과 건물 작업은 어떻게 함께했는지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죠. 무용수들이 춤을 추었던 철제 구조물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도 흥미로웠어요.
작품을 보면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특별한 생각이 떠오른 게 있나요?
저와 관련된 특정한 기억은 없었어요. 단지 제 파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파리에서 살고 있고, 파리에서 태어났죠. 그리고 저는 오페라 가르니에도 좋아해요.
현재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는 대형 브랜드 광고판이 있는데요, 그들은 두 달 동안 무언가를 만들 기회를 얻었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매우 창의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평소 선호하는 매체가 있나요?
회화를 좋아해요. 회화의 드로잉과 색이요. 그리고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회화 작품들도 특히 좋아하죠. 또 근대 회화들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지금 오르세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인상주의에 대한 전시에 가보셨으면 좋겠어. 올해가 인상주의 150주년인데 특별한 디지털 안경을 빌려서 3D 퍼포먼스도 볼 수 있어요. 매우 흥미롭고 추천합니다.
미첼 씨에게 예술은 어떤 건가요?
저는 근사한 것들을 좋아해요. 근사한 건물, 근사한 차, 근사한 도시 그리고 근사한 회화들이요. 저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이 않은 현대 회화들은 그다지 즐기지 않아요.
만약 어떤 작품이 개념적으로 정말 흥미롭다고 해도, 보기에 좋지 않으면 별로예요. 저는 흥미로운 회화들,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회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인터뷰를 나누며, 평소 어려운 작품들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회화 작품들을 즐기는 미첼이 JR의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JR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지만, 그가 말했듯 그가 이 전시를 재밌게 본 핵심 이유는 JR의 이 전시가 파리를 담뿍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가 일상의 장소인 파리지앵 미켈에게도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인듯 했다. 근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그가 근사한 것들로 가득 찬 파리를 사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