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북부 외곽의 팡탱(Pantin) 지역에 자리한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갤러리에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판화전을 보러 갔다. 심플하고 감각적인 초상 회화들로 잘 알려진 알렉스 카츠는 오랜 기간 동안 판화 작업을 지속해 왔다. 회화 작업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한 카츠의 판화 작업만을 조명한 이 전시를 노르웨이에서 온 문학 석사생, 에를렌(Erlen)과 보러 갔다.
전시를 보고 있는 에를렌
에를렌 셈 하르트겐 (Erlend Sem Hartgen)
코펜하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는 에를렌은 당시 파리에서의 교환학생을 대비하여 방학 기간 동안 파리에 체류하는 중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의 예술적이고 독특한 관점들과 문학적인 표현들이 흥미로워, 그가 전시를 감상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누군가와 전시를 볼 때 나는 동행의 스타일에 맞추는 편이다. 상대가 전시를 천천히 보는지, 빨리 보는지, 각자 흩어져 따로 보는지, 발을 맞추어 가끔 대화를 나누며 보는지, 분위기를 살피며 상대와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만약 주변에 아무도 신경 쓸 사람이 없다면 가볍게 전시 전체를 훅 둘러보고 전시의 구조와 인상을 파악한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꼼꼼히 작품 하나하나를 느끼며 감상한다. 이런 감상 방식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동행이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전시를 감상해 본 적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에를렌의 스타일에 맞추려 분위기를 살피는데 에를렌이 자연스럽게 흩어져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각자 천천히 보는 편이구나, 생각하며 나도 전시를 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전시를 다 본 듯했다. 너무 전시가 재미없었나? 걱정하며, 벌써 전시를 다 본 거냐고 살짝 농담을 던졌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전시를 감상하는 방법이 나와 똑같았다. 전시를 다 본 후 듣게 될 그의 생각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같은 방식으로, 하지만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전시를 감상한 후 우리는 갤러리 밖 카페에 앉아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렉스 카츠의 판화
이 갤러리를 전에 알고 있었나요? 갤러리 공간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건물이나, 분위기 같은 거요.
아뇨, 당신 덕분에 알게 됐어요. 저는 위치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시내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점이 좋고, 공간의 개방감도 마음에 듭니다. 이 공간이 큐레이팅된 느낌을 주지 않아서 오히려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과 어울리죠.
한 명의 아티스트의 많은 작품들을 이렇게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전시장 중앙에 서서 수십 개의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전시의 구성이 항상 이런 지, 아니면 가끔은 좀 더 큐레이팅을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큰 공간 안에 더 작은 공간들을 만들거나 기둥을 세우기도 하잖아요. 이전에 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멋진 곳이에요. 이번이 마지막 방문일 것 같진 않네요.
정말요?
네, 확실히요.
좋네요. 알렉스 카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요?
그저 이름 정도만요. 이름을 읽고 강렬한 색채와 연관되는 연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아, 이 사람이 팝 아티스트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어요. 그전에 봤던 작품이나 판화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정말 새로웠죠.
알렉스 카츠의 판화
거의 다 처음 본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새로 갖게 된 인상이 있나요?
네, 팝아트와의 연관성은 확실히 확인했어요. 굉장히 미국적이었고요.
인터뷰 전에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저는 처음에는 특별히 뭔가를 자세히 보지 않고 전시회를 쭉 둘러봤는데, 이 사람이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벽에 걸린 수많은 여성들의 초상들을 보고요. 그에 관한 정보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어떤 전기적인 정보를 몰랐던 점이 오히려 좋았어요. 그리고 만화적이고, 미국적인 감각, 은은함과는 반대인 직접적인 그 감각을 볼 수 있었어요. 굉장히 분명하고, 명백했죠.
크게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 좋았어요. 하지만 이런 장르에서는, 적어도 저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보통의 저라면 한 번 보고 이후에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잊어버릴 것 같거든요. 오늘 본 많은 작품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마지막 방에 있던 흑백 대형 이미지, 그 판화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 이미지들은 표면 위에, 혹은 그 아래에 무언가를 남겼다는 느낌이 들어요.
맞아요. 그 흑백 작품 굉장히 흥미로웠죠.
네, 그 작품은 표정에 더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한 재현보다는 탐구에 가까웠죠. 그래서 색깔이 있는 작품들보다 그 흑백 작품이 더 흥미로웠어요. 색이 있는 작품 중에는 실크 프린트가 굉장히 멋있었어요. 그 매체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실크 프린트를 찾아볼 것 같아요. 이게 제가 전반적으로 느낀 인상이에요.
에를렌과 그가 제일 마음에 든 알렉스 카츠의 흑백 판화
우리의 공통적인 전시 감상 방법이요. 어떻게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전체를 빠르게 둘러보고, 다시 천천히 보는 방식을 말하는 거죠? 저는 그런 방식으로 전시를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특히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는요.
전체 전시를 가볍게 한 번 둘러보는 거예요. 엄청나게 집중을 하거나, 하나의 작품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거죠.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언가는 인상에 남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어떤 정신적 노트를 남기게 돼요. 벽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전체 공간과 전시가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그 동적 요소들이 추상적인 수준에서 인상을 주죠. 그런 점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 후에는 다시 시작점 또든 어디든 다시 돌아가서, 어떤 것이 눈에 띄었고 무엇이 좋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제는 집중할 수 있고, 놀라워할 수도 있고, 처음엔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아주 좋다거나, 처음에는 발견하지도 못했던 것이 정말 멋지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죠. 정말 멋져요. 저는 이 방식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렇다면 첫 바퀴를 둘러볼 때 놓쳤지만, 다시 천천히 보면서 발견하게 된 작품이 있을까요?
네, 마지막 공간에 있던 그 커다란 흑백 작품이요.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주의를 끌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냥 와 정말 크다, 주목을 끌기 위한 작품이네. 이 정도로만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에는 전시에 있던 모든 작품들 중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맞은편에 있던 또 다른 흑백 판화
에를렌과의 대화가 다음 주 목요일에 이어집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어: 최보영 BoYoung Choi (수카 Sukha)
인터뷰이: 에를렌 셈 하르트겐 Erlend Sem Hartgen
인터뷰 진행일 : 2024년 7월 16일
전시 공간: 타데우스 로팍 파리 팡탱 Thaddaeus Ropac Paris Pantin
전시 정보: 알렉스 카츠 Alex Katz 《판화 60년 60 Years of Printmaking》, 2024.05.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