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에서 애니(Annie)를 처음 만났다. 언제나 친절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아트 디렉터다. 예술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금세 가까워진 우리는 함께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레에 있는 갤러리들을 같이 돌아보던 어느날, 애니는 자신이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폴카 갤러리(Polka Galerie)가 이 근처에 있다고 말했다. 같이 가볼래요? 당연하죠! 설레는 발걸음으로 그녀와 갤러리로 향했다.
사진 전문 갤러리인 폴카 갤러리에서는 파리 올림픽을 맞아,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 부르주아들이 고급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프랑스의 사진작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 Henri Lartigue)의 개인전《신성한 스포츠 Divinement sport》(2024.05.31.-09.07.)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애니와 함께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니와 그녀가 제일 마음에 든 자크 앙리 라르티크의 작품
애니 스펄링(Annie Sperling)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현재 파리에서 살고 있는 애니는 예술가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무대 및 설치 디자이너다. 예술, 편집, 상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을 비롯해 제이 로(J Lo),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퍼프 대디 & 퍼릴(Puff Daddy & Pharrell),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 여러 유명 스타들과 작업했다.
애니는 예술 매체 중 사진 매체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이곳에 들러 전시를 보고 갤러리 안의 사진 프린트들을 구경한다고 했다. 폴카 갤러리는 갤러리치고 규모가 큰 편이라 보통 여러 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자크 앙리 라르티크의 전시장으로 들어설 때 그녀는 스포츠라는 주제에 약간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함께 전시를 보면서 그녀의 생각이 바뀌는 듯했다. 사진 작품 하나하나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며, 멈춰서서 감상평을 말했다. 애니의 생각을 더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작품들
전시 어떻게 봤나요?
알다시피 처음에는 스포츠라는 주제 때문에 망설였어요. 하지만 전 갤러리의 전기적인 시선에 동의해요. 라르티크는 땅과 바다 위, 그리고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환희의 활동들을 정말 잘 포착했어요. 작품을 보면서 놀라운 충만함이 느껴졌죠. 저는 사진이 사람들의 명상적 순간이나, 이런 제스처들을 포착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저는 벨 에포크 시기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보통 진지한 사람들을 떠올려 왔어요. 하지만 이 전시는 벨 에포크 시대의 사람들의 천진한, 마치 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줘요. 이들이 웃고, 놀고, 자연을 탐험하고, 또 차나 비행기 같은 새로운 발명품들을 즐기는 장면들을 통해서요.
흑백 사진들도 정말 좋았어요. 물 위에 반사되는 빛이나 하늘의 모습을 흑백으로 보는 건 항상 마법 같은 일이에요. 흑백 사진은 사진 매체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요소들의 전형이에요.
사진이 제일 좋아하는 매체라고 하셨죠?
네, 사진은 저와 제일 크게 공명하는 매체인 것 같아요. 저는 사진에서 꾸준히 영감을 받아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사진은 여전히 진실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이렇게 작가가 구도의 장인이라고 느껴지는 사진을 볼 때면 행복해요. 그게 트릭이죠. 모두가 사진을 찍지만 빠르게 좋은 구도를 잡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애니씨는 예술가시잖아요. 전시를 볼 때 예술가로서 특별히 다르게 보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네, 한 명의 예술가로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주제에 접근하는지를 보는 편이에요. 항상 가능성을 남겨두고 너무 많은 정보나 글을 읽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시각미술은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고 믿거든요. 제가 뒷 이야기를 꼭 읽을 필요없이요. 어떤 요소들이 제게 영감을 주는 지 보는 것도 좋아요. 특히 색에서요. 이번 전시 같은 경우는 색의 없음, 흑백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항상 다른 작가들의 관점에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는 편이에요.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작품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어떤 거였어요?
거의 다 마음에 들었지만 호수 위에 떠있는 사람의 사진이 좋았어요. 꽤 흥미로웠죠. 그리고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이 사진도 굉장히 재밌었어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재밌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거의 관음증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카메라의 렌즈는 우리가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거의 여름날 해변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곳에는 어떤 본능적인 감각이 있어요.
귀족으로 태어나 가족, 친구들과 귀족들의 여가를 즐기며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었던 자크 앙리 라르티크. 그의 작품들 중에는 지난번 파리 올림픽 시기에 촬영된 것도 있었다. 그 작품들이 시간을 건너 또 다른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에서 온 애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사진을 보며 100년 전의 프랑스를 여행했다.
나는 전시를 보며 프랑스의 옛 모습보다는 사진 속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동세가 눈에 들어왔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나도 그녀의 상상을 빌려 슬쩍 100년 전의 프랑스를 그려보았다. 스트라이프 수영복을 입고 같이 수영을 하고, 사진 속의 사람들과 새로 나온 차를 몰았다. 애니와 함께 전시를 보고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대화하는 시간이 퍽 즐거웠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어: 최보영 BoYoung Choi (수카 Sukha)
인터뷰이: 애니 스펄링 Annie Sperling
인터뷰 진행일 : 2024년 6월 26일
전시 공간: 폴카 갤러리 Polka Galerie
전시 정보: 자크 앙리 라르티그 Jacques Henri Lartigue 《신성한 스포츠 Divinement sport》, 2024.05.31. - 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