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많은 사람들은 전시를 보러 갈 때 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꾸려진 전시를 볼 수 있다. 넓고 갖춰진 공간에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미술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이 샘솟는다. 반면 갤러리에서는 잘 모르는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공간도 미술관과 비교하면 훨씬 작고 비좁다. 빛나는 조명과 차려입은 갤러리스트들은 또 너무 화려해 보이기도 한다. 분명 같은 미술인데 어쩐지 미술관에서 만나는 미술과 달라 보인다. 낯설기도 하고, 너무 상업적인 것도 같고, 심지어 덜 예술적인 것 같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 경험상 미술이 진짜 즐거워지는 건 갤러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의외로 우리는 미술관에서보다 갤러리에서 더 생생한 미술을 만날 수 있다. 작고 좁은 공간이기에 오히려 친근하고, 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걸리기 때문에 떠오르는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상업적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갤러리란 어떤 곳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미술관을 “미술품을 전시하는 시설”로, 갤러리를 “미술품을 진열,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라고 정의한다. 미술관과 구별되는 갤러리의 모든 성격은 작품을 판매한다는 이 영리 추구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간단하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갤러리가 있는데, 이들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갖추는 것이 갤러리의 작동원리이다. 즉 다른 갤러리들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갤러리는 일한다.
갤러리가 취하는 생존 전략은 어떤 작가들과 손을 잡고, 어떤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를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달려있다. 갤러리는 치열한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한다. 갤러리는 예술적이면서도 팔릴 만한 작품을 물색하러 다니고, 작가들과 소통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독려하고 조언한다. 그리고 작품을 사는 콜렉터들이 갤러리가 찾아낸 작가들에게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하고 선보인다.
갤러리를 쉽게 이해하는 법은 우리에게 친근한 연예기획사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테나라는 뮤직레이블에는 정재형, 루시드폴, 권진아, 정승환 등 소속 아티스트들이 있고, 이들이 선보이는 음악은 다른 회사에서 나오는 음악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아티스트들이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특정한 이 결이 안테나의 회사의 정체성이자 색깔이다. 갤러리 또한 마찬가지다. 갤러리스트들은 자기만의 시선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들 중 작품 판로를 찾고 작업 외의 부수적인 활동에 쏟을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고 싶은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각각의 갤러리에는 소속된 작가 혹은 소속되지 않더라도 전시를 함께하거나 작품을 판매하는 함께 일하는 작가들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가들의 작품에서 흐르는 특정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갤러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갤러리에서 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연예기획사에서 소속 연예인들의 활동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작품을 홍보하듯이, 갤러리는 소속 작가들의 다양한 스케줄(전시, 다른 곳과의 협업, 인터뷰 등)을 관리하고 작품을 전시, 아트페어, 콜렉터들과의 소통 등의 활로를 통해 작품을 홍보한다. 필요에 따라 작가의 작업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며 조언자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요약하자면 갤러리는 함께 일할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을 관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아트페어나 직접적인 고객과의 소통 등 다양한 판로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일들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일들이 갤러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커다란 기준이 된다. 갤러리와 함께 일하는 소속 작가, 기획 전시 그리고 아트페어. 이외에도 갤러리는 많은 일을 하지만 이렇게 세 축을 기준으로 갤러리는 돌아간다. 따라서 어떤 한 갤러리의 성격을 파악하고 싶다면 이 갤러리가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일하고 어떤 전시를 선보이고 어떤 아트페어에 참여하는지 보면 된다. 작가나 전시의 성격은 팝아트와 같은 스타일에서부터 사진이나 회화, 조각과 같은 매체 혹은 유럽이나 중국 등 작가의 국적과 같은 외적 요소가 될 수도 있고, 작품에 흐르는 서사성이나 특정한 시의적 주제와 같은 보다 내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트페어는 아트페어의 명성과 역사에 맞춰 갤러리들의 참여를 받기 때문에, 아트페어의 성격이나 수준을 확인함으로써 갤러리의 규모나 질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정보들은 갤러리 홈페이지에 모두 아카이빙 되어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기준은 갤러리 여행에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미 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그 전시에서 출발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다루는 갤러리를 발견할 수도 있고, 비슷한 명성과 규모의 갤러리들을 한꺼번에 보고 고르고 싶다면 아트페어에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당연히 갤러리를 방문하기 전 내 취향에 맞는 갤러리를 고르거나, 이미 가본 갤러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때도 이러한 기준을 활용하면 된다. 나 역시 이러한 면들을 염두에 두고 갤러리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취향과 꼭 맞는 갤러리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