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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Sep 01. 2020

기분이 나쁠 때는 밥을 먹어야 돼!


기분이 나쁠 때는 밥을 먹어야 돼!


식당 종업원에게 공깃밥을 주문한 아빠는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아, 왜 꼭 저렇게 아저씨 티를 팍팍 내면서 말해야 할까 싶었지만 내용은 공감하는 바였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본가로 들어온 몇 달 전까지 꼬박 8년 반을 혼자서 살았다. 엄마 밥과 학교 급식만 먹고살던 어린 고등학생이 어찌어찌 서울로 올라가, 대학교 생활에 적응하랴 색색깔의 지하철 타는 법을 배우랴 정신없어 미처 밥 챙겨 먹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침은 바나나 두 개에 우유 한 컵, 점심은 학교 매점에서 김밥 한 줄, 저녁은 대충 때우거나 거르기. 빈약한 식사에 드는 아쉬움은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는 것으로 채웠다. 그러다 보니 원래도 그다지 튼튼하지 못했던 소화기관이 날마다 말썽을 일으켰다. 걸핏하면 체하거나 반대로 화장실로 달려가기 일쑤니 차라리 굶자 싶어 안 그래도 빈약했던 식사를 더 확 줄여 배가 정말 고플 때만 먹기 시작했다. 먹을 게 안 들어가니 속은 편안해진 듯했지만 곧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으니 어쩐지 작은 일에도 쉽사리 기분이 상했다.


내 식습관이 매일의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남자 친구였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단탄지의 비율을 따져먹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진 그는 처음 내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 알게 된 후로 끊임없이 밥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단지 그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조금씩 챙겨 먹기 시작한 후로 느껴지는 변화에 나는 뒤늦게 밥의 중요성을 깨달았었다.



말을 듣자 하니 아빠도 같았던 듯했다.



"오늘은 점심을 대충 먹었더니 자꾸 머리가 아파. 밥 한 공기 먹어야겠다. 밥을 안 먹으면 말야, 신경 안 써도 되는 게 자꾸 신경이 쓰여."



인상을 찌푸린 아빠는 코로나 때문에 안 그래도 안 되는 장사가 더 안 된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찌푸린 아빠의 얼굴보고 있자니 어쩐지 미간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빠는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는 걸 어쩌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외쳐도 한치 소용없더라. 괜히 잠만 내리 못 자고 속만 상하는 거야. 그렇게 염불 외고 있을 시간에는 차라리 밥 한 끼 먹는 게 낫더라. 그러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절로 사라지더라고! 내가 이걸 육십이 다 돼서야 깨달았으니, 쯧."



자기가 평생의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삶의 지혜이니 새겨들으라는 아빠의 말 위로 대식가인 아빠가 한 끼조차 챙겨 먹지 못하고 보야만 했던 바쁜 날들이 그려졌다. 그렇게까지 아빠를 괴롭히던 생각은 뭐였을까. 온갖 생각들에 뜬눈으로 지새웠을 아빠의 숱한 밤들도 덮였다.


내가 처음 밥 챙겨 먹기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때 들었던 기분은, 매일 하는 이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충격이었다. 그걸 이십 대 후반이 돼서야 깨닫다니. 참 여태껏 뭐하고 살았나 자책도 했었는데, 아빠는 육십이 다돼서야 깨달았다니.


아빠는 대체 뭐하느라 여태껏 그 간단한 것조차도 배우지 못했을까. 내가 서울살이에 치여 못 배웠던 것과 같은 이유겠지. 삶의 중요해 보이는 일들에 치여 이런 기본적인 것에는 자연히 소홀해졌던 거겠지. 내 서울살이처럼 혹은 그보다 더 바쁜 나날들이 아빠의 육십 년 평생이었겠구나 싶어 입안이 썼다.


앞을 보니 아빠는 공깃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나에게 아빠는 너도 밥을 먹으라며 권했다. 배가 불렀지만 말했다.


응, 알겠어. 아빠도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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