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Nov 03. 2020

꽉 잠겨버린 수도꼭지




"난 이제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안 나오드라. 젊은 애들은 좋겠어. 눈물샘이 촉촉해서."



툭 던지듯이 들려온 말이었다. 옆에 있던 어른들이 깔깔 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휴. 맞아. 아주 내 눈물샘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니까. 사막이야. 사막. 다들 웃는데 도저히 같이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어렸을 때 종종 수도꼭지라고 불렀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고여 눈이 그렁그렁해지기 일쑤였고, 그렁그렁을 넘어 엉엉 잘도 울었기 때문이었다. 커서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대학교 때 만나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지하철에서도 펑펑 울고, 감기에 걸려서 너무 아프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걸어 다니고, 심지어 강의를 듣는데 눈물이 안 멈춰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세 시간짜리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창피하지 않았거나 내가 울면 교수님이, 지하철 옆자리 사람들이 곤란해하겠지 이런 생각 못게 아니다. 정말 눈물샘이 주체가 안될 뿐. '도 정말 안 그러고 싶은데 조절이 안 돼요.' 매번 으로 외쳤다.



이런 나에게도 꼭지가 꽉 틀어 잠겨 눈물이 나오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가슴이 얹히고 답답한 날들이 계속돼 울어보려고 감정도 잡아보고, 슬픈 영화를 봐도 몇 달 내내 눈물 한 방울 나오질 않았다. 울고 싶은데, 수도꼭지 경력 이십몇 년으로 봤을 때 몇 날 며칠을 울어도 충분하지 않은 마음인데, 왜 눈물은 나오지 않을까.



몇 달을 담아 둔 이 질문을 해결해준 건 의외로 러닝이었다. 마음이 불편하니 점점 건강이 나빠져 다니기 시작한 헬스장에서 속도를 빠르게 해 놓고 마구 달리던 어느 날, 속상한 생각은 전혀 안 했는데 눈물이 그냥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게 저절로 툭 풀려버린 것처럼. 속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러닝머신 앞이 벽이어서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후로 나는 매일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이제 나는 다시 수도꼭지로 돌아갔다. 걸핏하면 펑펑 잘 울고 있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때만큼 답답하진 않다. 아마 그래서 였던 것 같다.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안 나온다는 그 말에 웃을 수 없었던 건. 어쩌면 세월이 쌓여 조그만 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강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 울지 못하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샘이 말라버린 그 사람이 실은 나와 같았다면, 그녀의 잠겨버린 수도꼭지가 어떻게든 조금은 풀릴 수 있기를. 그래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울고 싶은데 울 수 없는 의 슬픔을 알기에.





지난 에세이 "그냥 웃어버리는 당신"에서 웃음에 관해 써서, 울음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에세이를 모아 브런치 북 '저장된 순간들'을 발간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sukha


매거진의 이전글 간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