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장 잔잔했던 바닷가
우리가 살고 있는 천진 해변은 흔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은 보통의 바닷가 마을과는 조금 틀리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바닷가 마을의 이미지는 작거나 큰 포구가 있고, 이를 통해 어선들이 왔다 갔다 하며, 마을 경제를 이끌어간다. 부둣가에는 막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어머니들과 이를 말리는 덕장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 천진해변은 작은 어선 한 척도 없고 어민들이 배를 여러 척 댈 수 있는 큰 포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배를 대는 곳이라 해 봐야, 다이빙 리조트의 배 한대가 전부이고, 바닷가를 쭉 둘러서 펜션과 민박집들과 작은 카페들만 서 있다.
여름이면 잔잔하게 해수욕을 즐기거나 산소통을 매고 다니는 다이버 들만이 있는 해변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작지만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양양을 중심으로 커지던 서핑 시장이 점점 포화상태로 치닫고, 이를 피해서 넘어온 조용한 성격의 서퍼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며 천진에도 작은 서핑 교습소가 생겼다. 그리고, 이곳을 베이스로 서핑을 즐기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2017년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총 4개의 서핑숍이 생겨났다.
서핑이라는 운동의 특징이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다로 끌어온다. 그 덕일까? 우리 마을에는 젊고 감각 있는 친구들이 모이는 나름 '힙' 한 동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서핑이라는 운동이 마을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던 작년 여름 우리 마을, 서핑 샵 대표들과 일부 친구들이 모여 작은 행사를 기획했다.
행사의 취지는 7월 한 달 폭염으로 인해 해수욕장에 거의 사람이 찾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이로 인해 지역에서 작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어하셨다. 더군다나 이렇다 할 내세울 명소나 이벤트가 없는 우리 마을은 더더욱 사람들이 찾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뭐가 없을까 하여,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서핑 관련 행사와 더불어 플리마켓 등의 행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머리를 맞대고 행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핑'이라는 주제가 너무 젊은이나 외부인에 편중되는 느낌이라, 서핑은 하나의 소재로, 플리마켓과 전통음식 (섭죽)을 마을 주민들과 나누는 동네잔치의 느낌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주민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함께 해 주실 것을 권유했고, 이장님의 도움으로 많은 지역분들이 참여의 의사를 밝혀주셨고 우리는 그렇게 이곳을 찾아주시고 행사를 함께 즐길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작게나마 전달하기 위해 지인들의 도움을 조금씩 요청해 한분 한분 나눠 드릴수 있는 선물들도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 일정을 잡았던 10월 초, 예상치 못한 태풍의 영향으로 부득이하게 날짜를 바꿨어야 했다. 결국 결정된 13일은 양양에서 열리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서핑대회의 일정과 겹쳤고, 주변에서 다들 그 여파로 너네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행사의 흥행 여부보다는 마을 어르신들과의 어울림마당과 행사의 운영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일정을 확정하고 준비를 마무리해 나갔다.
다행히 모든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행사에 쓰일 기념품과 인쇄물 등이 아무 문제없이 우리 창고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행사 당일 10월이라고는 하지만 한여름에 버금가는 뜨거운 햇살이 되려 걱정이었다. 아침일찍부터 행사 준비를 마치고, 행사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 가능한지 빠짐없이 체크 해 갔다.
시작시간이 되어 간단하게 개회식 아닌 개회식을 마치고, 바로 예선 경기를 시작했다. 각 샵들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모두 똑같은 스펀지(소프트 탑) 서핑보드로 경기를 치렀는데, 우리 대회의 형식이 조금은 틀렸다.
잘 타고 못 타고 보다는 얼마나 즐겁게 타는지를 지켜보고, 채점을 심판이 하는 게 아닌 당일 참여한 갤러리들이 직접 해 주는 방식으로 해서 행사에 참여한 모두가 잔치의 일부가 된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심벌로 쓰인 이미지는 2ndary Action Studio 에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날 미리 준비해둔 재료로 미리 다 만들어 둔 음식을 해변에서 다시 데우고, 김치와 함께 그릇에 담아 다들 먹기 좋게 마을 부녀회 분들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해 주셨다.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낸 '섭죽' 은 자연산 홍합과 여러가지 재료를 정성으로 끓여내 요즘에는 어지간한 식당에서도 단가 때문에 만들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다들 반가워 하시며, 정말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하다.
**음식을 준비 해 주신 봉포 머구리 집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 달여를 고민해 만들어진 '천진 서핑 잔치'는 관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만들어진 천진, 특히 고성군의 첫 서핑대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의 끝물에 만들어져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해 주셔서 다들 힘들었지만 기쁘게 봉사하고 행사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대회의 진행과 방송을 하느라 나중에는 목이 잠겨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지만, 나 역시도 이곳 천진해변에 거주하는 외부인이지만, 한걸음 정도는 더 주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게 모든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진 않지만,
지역민들과 어울려가며 소소하게 작은 재미를 만들었던 우리들의 잔치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올 해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된다.
천진 서핑 잔치 스케치 영상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eonjin_surfingfesti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