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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시일강 김형숙 Oct 09. 2023

꽃게를 보며 18년 전 그날의 악몽

그의 생일날 꽃게를 먹으며

오늘은 짝꿍의 생일날이다. 그와 함께 산지 어느덧 18년이란 시간이다. 저녁 7시가 넘어 미용실에서 컷을 하며 그의 생일인 것을 알았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그의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가족톡방을 보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미용실 원장은 남편에게 케이크와 꽃다발, 그리고 10만 원을 선물하라고 했다. 인생의 남은 후반전 신랑이 잘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망설이다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문 닫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 꽃집에 갔다. 노란 국화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에게 눈길을 보내는 녀석을 보며 그를 한 아름 집어 들었다. 꽃의 가격이 비쌌다. 이왕 결심한 거 남은 녀석들을 포장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알록달록 국화꽃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예쁜 장미꽃과 안개꽃도 있었다. 붉은 장미꽃을 집어들까 하다가 나를 기쁘게 맞아준 이 녀석을 선택했다.

5만 원권 신권이 집에 있었다. 20만 원을 돌돌 말아 국화꽃 속에 넣었다. 꽃은 돈냄새를 싫어했다. 돈의 야욕을 쫓는 사람들을 꽃은 반기지 않는 듯 뽀로통하다. 노란색은 질투다. 곧 그의 속내를 드러내었다. 나보다 조금 예쁜 국화꽃은 잉크냄새가 나는 돈을 밀어내었다. 꽃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이는 5만 원짜리 한 장을 아빠 선물로 꽃에 꽂았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정육점이었다. 미역국을 아침에 끓여주지 못했다. 마음이 편하려면 지금이라도 해야 했다. 그의 퇴근시간은 7시. 집에 오면  7시 30분이 된다. 서둘러야 했다. 국거리 소고기와 아이가 좋아하는 삼겹살 한 근을 샀다.  7% 할인해서 산 서울페이로 28,000원 정도 계산을 했다. 포인트 적립도 잊지 않았다.

세 번째 간 곳은 근처에 파리바게트였다. 케이크를 작은 것으로 골랐다. 큰 것을 사면 냉동실에 들어간다. 아이가 커서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3인 아이는 공부보다 몸관리, 얼굴관리를 하고 있다. 통신사 멤버십이 있으면 10% 할인받는다. 나는 KT멤버십으로 10% 할인받아 28,000원 케이크를 25,000원대로 구입했다.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로 가?"

"홈플러스로 오렴"

아이와 함께 조개 칼국수를 이른 저녁 5시에 먹고 시장을 봤다. 아이는 인성이 바르다. 예절이 바르다. 공부는 조금 못해도 인성이 참해서 감사하다.

홈플러스는 저녁시간인지라 살아있는 꽃게를 1만 원 정도 저렴하게 팔았다. 2만 원대 가격으로 한 박스를 구입해 집에 왔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흐뭇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꽃게를 잡았다. 속에 목장갑도 끼었다. 꽃게가 물고 놓지 않았다. 고무장갑이 펑크 났다. 위험을 느껴서 집게를 이용해 꽃게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된장을 푼 물에 삼발이를 놓고 꽃게를 쪘다. 빨갛게 익은 게를 아이와 먹으며 추억을 이야기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날 신랑 친구들과 꽃게찜을 먹었다. 그는 과음을 했다. 새벽 4시쯤에 양수가 터졌다. 코를 골고 자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화를 냈다.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가 가까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멀리 살았다. 그 새벽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미숙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는 단잠을 깨웠다고 화를 내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택시를 타고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장을 비웠다. 얼마 후 짝꿍이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도착했다.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픈 통증이 아니라 기분 나쁜 통증이었다. 배는 아프고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옆에서 나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출산대 위에서 은밀한 곳을 남에게 보이고 있으니 정말 창피했다.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털도 깎았다. 물을 뿌리는 데 갯벌에서 미끄러진 것처럼 기분이 엉망이었다.

얼마간의 산후통을 겪은 후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산후통이 약했는지 하체의 은밀한 부분을 자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바늘로 꿰매는 통증이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니 전신마취를 하고 꿰매었다.


2시간여 시간이 흐른 후 마취에서 깨어났다. 짝꿍은 가서 아이를 보라며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아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회사로 갔다. 대신 그의 여동생이 나를 간호해 주었다. 의사는 움직이라고 하는데 아파서 걷는 게 힘들었다. 친정엄마가 옆에 없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오늘 꽃게를 아이와 먹으며 18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누구나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이 있기 때문에 삶은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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