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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시일강 김형숙 Oct 13. 2023

가을 단풍잎처럼 빛나는 기억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행복한 순간들

가을 단풍잎처럼 빛나는 기억     

  가을은 예쁘다. 가을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잎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따뜻하게 빛나는 계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행복한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자연의 축제이다. 이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가을풍경과 단풍잎, 익어가는 곡식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다양한 과일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큰 축제를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내가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시골에서 과수원을 했다. 여름에는 포도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가을에 우리 가족 수입원은 감이었다. 삼산골(지명) 밭에 가랑이에 감나무를 둘러 심었다. 오르막길이 비탈져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데굴데굴 굴러간다. 감나무는 키가 컸다. 어린 내가 따라다니며 손에 닿는 감은 거의 없었다. 긴 장대를 이용해 나뭇가지에 달린 감의 가지를 꺾었다. 장대는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대나무 끝을 두 갈래로 나눈다. 더 이상 갈라지지 않게 끈으로 동여맨다. 이 사이로 장대를 넣어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려 꺾는다. 감나무에 올라갈 때는 허리춤에 바구니를 동인다. 감을 따서 넣기 위함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감을 따는 동안 나는 주로 바닥에 앉아서 떨어진 홍시를 먹었다. 주홍빛 홍시는 식감을 자극했다. 한 번은 감나무에 올라갔다. 썩은 가지를 밟아서 계곡에 떨어진 적이 있다. 그 뒤로 감나무에 올라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가는 길은 집에서 출발해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산을 세 고개 반을 넘어가야 했다. 보이는 것은 산이고 들판이었다. 흙길 주변으로 포도나무와 자두나무, 감나무 등이 즐비하게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 다녔나 싶다. 오가며 친구들과 장난을 쳤다. 때로는 주인 몰래 감을 따먹었다. 여름에는 새콤한 자두가 맛있었다. 복숭아 또한 잔털이 있었지만 맛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는 동네잔치였다. 내가 살던 소롱골이 학교에서 제일 먼 거리였다. 이날은 바쁜 일손을 놓고 부모님이 참석하는 날이다. 비가 와도 바빠서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지 않았던 부모님은 이날만큼은 참여했다. 운동회의 꽃은 달리기다. 난 1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항상 1등을 했다. 6년 동안 언제나 4등이었다. 3등까지만 상을 준다.      

  나는 유난히 밤을 좋아한다. 세숫대야 작은 크기에 아버지가 주워온 밤이 담겨 있다. 생밤을 다 먹어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밤의 껍질은 이중으로 되어있어 단단하다. 칼로 하지 않으면 힘이 들정도다. 손의 아구도 아프다. 입의 아구도 아프다. 결혼을 해서 서울에 살고 있는 첫딸이 좋아하는 밤을 아버지는 해마다 힘겹게 주워서 보내주셨다. 밤나무는 비탈진 산기슭에 있다. 밤 한 톨 주우면서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시방석이다. 어린 시절 나도 밤을 주우러 갔다가 미끄러져 손을 바닥에 짚었다. 손에 박힌 가시를 빼어내느라 눈물이 흘렀다. 밤의 가시는 유난히 날카롭고 뾰족하다. 한번 박힌 가시를 뽑아내는 아픔이 컸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지금 계시지 않는다. 70대 중반까지 한 톨한 톨 주워서 벌레 먹은 것은 버리고 큰 것으로 보내주었다. 그래도 벌레 먹은 밤톨이 나왔다. 아버지가 주워 보낸 밤이 냉동실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밤을 마주하면 그분이 생각난다.     

  낭독하는 사람의 가을은 아름답다. 가을 단풍은 예쁘다.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럽다. 이 가을 낭독으로 춤을 추어 본다.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을 느낀 지 몇 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사랑을 배웠다.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낭독은 어린 시절의 추억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회복시켜 준다. 가을 단풍잎처럼 곱게 물들어가는 낭독성우들을 오늘도 응원한다.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다. 그중에서도 가을은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아름다운 계절, 추수의 기쁨, 여행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전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이 주는 이런 소중한 선물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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