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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속을 뚫고 내 몸을 검진하려 간다

나라에서 2년마다 해야 하는 검진 날

by 이숙자

무슨 빚쟁이 조르듯 문자가 온다. 국민 건강보험에서다. 말이 쉽지 건강 검진을 해야 하는 일은 보통 거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 않을 수만 있으면 건너뛰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일이라서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진즉에 병원에 예약을 해 놓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 미루어 왔다. 드디어 약속날이 찾아왔다.


어제 아침 일이다. 다른 날은 자유롭게,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는데 어제는 긴장된 탓인지 새벽같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아침 새벽 5시부터 물에 약을 타서 먹어야 하는 일 때문이었다. 전날 점심에 흰 죽을 조금 먹고부터 다음 날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위를 비워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수 없이 많은 물을 먹어야 하고 여간 고역이 아니다.


예전에 장내시경 했을 때도 그랬을 텐데, 대장검진 한지 오래되어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어떻게 했지, 그때를 잃어버린 체 힘들다는 생각만 한다. 마치 엄마들이 아기 낳을 때 힘들어 다시는 아기 낳지 않으리라 맹세해 놓고 다시 아기 낳는 경우와 같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검진을 빨리 하려고 진즉에 아는 지인을 통해 병원에 예약을 해 놓았지만 집안에 뜻하지 않는 일들이 자꾸 생겨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세 번을 미루었으니 어제는 꼭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했다. 일 년을 살아 내면서 꼭 해야 할 커다란 일들이 있다. 그걸 하나씩 숙제하듯 해내면서 홀가분한 마음이다.


나는 성격이 A형이 라서 그런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안정이 안된다. 무슨 일이든 정확히 해 내야 안심이 된다. 내 건강검진만 끝내면 올해 내가 해야 할 큰일은 끝난다. 주사를 맞고 피검사를 하고 팔에 주사를 놓으니 아프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기에 참아낸다. 세상 일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그걸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본인 몫이다.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약을 먹으며 밖을 보니 아주 깜깜하다. 지금 까지 군산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하나 거의 밤에 많이 내렸고 엊그제는 낮에 왔지만 많이 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제 하늘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늘에서는 우르르 꽝꽝 번개가 치고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물폭탄을 쏟아 낸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야단 났다. 폰에서는 재난 문자가 계속 온다. 군산지역 집중호의 주의보를 알린다. 집에서 꼼짝 하지 말란다.


창문 밖 비 오는 모습만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더 무섭고 두렵다. 정말 약 먹고 위 비워 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걸 어쩌나, 그치지 않는 빗줄기만 바라보고 있다.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 기다리자. 사람 사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땐 기다리면 또 좋은 날이 오고 좋은 날이 계속되는 삶도 없다. 어느 날인가는 또 힘든 날이 오는 것이 인생이다.


잠시 찾아오는 일에 일희 일비 하지 말고 살자.


잠시 후, 소낙비는 오지만 번개와 벼락이 조금 약해진 듯하여 그냥 병원을 가야지 싶어 남편차를 타는데 또 벼락이 친다. 주말이고 비는 이토록 많이 오는데 도로에 차는 제법 많다. 이 빗속에 저 사람들은 어디를 갈까? 별것이 다 궁금하다. 천천히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을 하고서야 안심이 된다.


병원 검진 센타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 빗속을 뚫고 사람들이 이처럼 모이다니 모두 대단해 보였다. 나는 순서에 따라 검진을 시작했다. 항상 생각하는 일이지만 위 내시경은 비 수면으로 하면 고약하다. 그래도 참는다. 간호사가 귓가에 들려주는 소리가 위안이 된다. "잘하고 계셔요, 곧 끝나요. 조그만 참고 계셔요" 사람은 말한 마디에 마음이 안심이 된다. 그 긴 줄이 내 위속을 헤집고 다니는 걸 느낀다.


위는 비수면, 장은 수면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주사를 놓고 입에 무엇을 주입하고 내 몸 하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생각한다. 사람 몸이라는 것이 수 없이 많은 장기를 다 검사를 해야 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에 착잡해 온다. 간이침대에 누워 간호원이 움직이라는 데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그 생각을 끝으로 다음은 모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남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예요.?" 그 소리에 깨어 나는 간호원에게 물었다. 대장내시경 끝났어요? "그럼요" 아 그랬구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나머지 검사를 하고 대장, 위 다른 곳도 설명 듣는다. 위는 위염이 조금 있고 장은 깨끗하고 다른 곳은 다음에 서신으로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끝난다. 그렇게 하기 힘들었던 일이 끝났다. 정말 후련하다. 위는 검진을 할 때마다 위염이 있다고 약을 좀 먹어야 한다고 설명을 한다.


아. 그렇게 걱정스러웠던 어려운 일을 해 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언제 왔냐 할 정도로 말끔히 개이고 하늘에는 햇살 가득이다. 온몸에 기력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은 남편이 외식이라도 하셨으면 싶지만 집으로 와서 밥 차려 달라는 남편이 야속하다. 남편 밥을 차려 주고 나는 침대로 가서 깊은 수면 속으로 빠진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로 밖에 없다는 걸 인식한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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