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나 싶어서다. 어른들이 계실 때는 더 놀라곤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난 집안 어른들, 하지만 사람 사는 모르는 일, 산다는 것은 매일 전쟁 같은 날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체 살아가는 우리의 삶,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다행이고 감사하다.
전화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는 손자다. " 할머니 저 준하예요."
"응, 웬일이야, 이렇게 이른 아침에 우리 손자가" 손자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네. 외갓집 다녀온 지 오래되여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세상에 이제 열두 살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하다니, 그 말을 듣고서 울컥해 온다. 전화 끊을 때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전해준다.
천만번 들어도 기분 좋은말. "사랑한다" 그 한마디가 왜 그리 따뜻한지 목이 멘다.
더욱이요즘 늦가을 지는 낙엽을 보면서 마음이 여간 쓸쓸하고 스산한 것이 아니다. 매년 돌아오는 가을이건만 아름다운 단풍과 지는 은행잎을보고 있으면 곧바로 내 모습을 닮은 듯 마음 한 구석에 찬 바람이 분다.
이맘때쯤가을이면나도 몰래 '정호승시인의 '수선화에게' 시를 읊조린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고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이 아침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고 목소리 들고 싶어 전화를 해 주다니요.
오늘 하루, 그 말이 귓가에 맴돌고 하루 종일 신날 것 같은 날이다.
나도 오늘은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목소리 듣고 싶다고 안부를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