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먹거리, 김장을 끝내고

일 년 먹을 김치를 담아 사랑은 전한다

by 이숙자
김장 담그는 장면

지난주 수요일부터 김장 준비를 해야 했었다. 올 김장 배추 구입은 시니어에서 해남 배추 주문을 받는다는 문자에 80k 주문을 했다. 외지에서 배추 주문은 처음 일이지만 괜찮겠지, 하면서 걱정을 내려놓는다. 요즈음 TV를 보면 위생적으로 배추를 잘 씻어 보내는 걸 보았다. 집에서 배추를 절이는 일은 많이 힘든다.


김장은 매년 해야 하는 연례행사지만 항상 김장을 끝내고 김치 냉장고에 김치를 채워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아무 때라도 자녀들이 오면 김치 한통씩 들려 보내야 마음이 흐뭇하다. 지금은 김치를 사 먹고사는 사람도 많지만 아직도 습관이 되지를 않아 매년 김치를 담그고 있다. 동생네 집 김치까지 함께 해야 하기에 거의 일주일을 동당거린다. 드디어 일 년 먹을 먹거리 김장이 어제 까지 다 끝냈다.


예전에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은 김치를 많이 담아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까지 김치는 우리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요긴한 부식이었다. 지금은 먹 거리가 많고 마트에는 야채들이 철을 가리지 않고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결혼 후 50년이 넘는 세월을 김장을 하고 살아온 나는 습관이 쉽게 바꾸어지지 않고 매년 김치를 담고 있다.


나는 젊어서는 직장 생활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김장하는 걸 거의 참여를 못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가까이 살았던 외갓집, 김장하는 날은 마치 동네잔치하는 날이나 다름없었다. 동네 사람이 모두 모여 김장을 하고 수육을 삶고 생선찌개를 해서 김치는 항아리 뚜껑에 하나 가득 담아놓고 둘러앉아 먹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지난 그날들이 눈물 나게 그립다.


나는 친정 엄마가 세상에 살아있다는 표현을 김치를 담가 딸들에게 보내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혹여라도 몸이 아프거나 김장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못되면 어쩌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실 김장의 시작은 봄에 젓갈을 담그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 집 남편은 제일 좋아하는 젓갈이 가자미 젓갈이다. 봄에 가자미가 많이 나올 때 젓갈을 담가 놓으면 다음 해는 김치를 담을 수 있다. 일 년이 넘게 숙성된 가자미 젓갈은 국물색부터 다르다. 고소하고 맑은 젓갈을 김치 맛을 좌우하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때가 되면 고춧가루를 사놓고 마늘이 나 올 때는 마늘을 사놓는다. 일 년을 살아가면서 계절 따라 나오는 농산물을 사서 준비하는 과정도 주부가 살아가는 일상이며 작은 즐거움이다. 김장을 담그는 것은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기쁨이기도 하다. 김치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돌산 갓김치만 담근다.


김치를 담글 때면 마음이 시린 사람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 얼굴도 떠오른다. 특히 요즘 같이 코로나로 같이 밥 한 끼 먹기도 힘든 때 김치를 담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활동할 때 도움을 주셨던 어른이 올해 부인도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고 계신다. 사람이 살면서 마음의 빚이 있으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김치를 다 담근 다음 날, 그림일기를 같이 하는 김정희 선생님은 텃밭에서 뽑은 거라며 무를 커다란 비닐봉지로 한가득 가지고 왔다. 나는 김치를 다 담근 후지만 다듬어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한 통씩 담가 남편에게 부탁해 그 어른 댁에 가져다주고 오셨다. 김치를 받고 많이 좋아하셨다고 한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식사 대접을 못 해 드려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나이 들면 자꾸 빚을 갚고 살아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 이제는 주변 사람에게 빚지는 일은 하기 싫다. 나는 가끔씩 김장을 할 때면 고마웠던 사람에게 김치로 마음을 전한다. 내 가 할 수 있는 일, 자식에게 김장을 담가 주는 일도 어쩌면 일 년 동안 부모에게 마음 쓰며 사랑을 전해 주었던 마음을 되돌려 갚아 주는 일인 듯 한 생각이다.

어젯밤에 찐 찰밥

내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김장을 하고 김치를 담아 사랑을 전하고 살 것이다. 김치는 내가 사랑은 전하는 나만의 삶의 방법이다. 어제는 찰밥까지 쪄서 오늘 아침에 수원 올라가는 조카에게 딸네 집과 조카네 까지 소분해서 보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다.


동생네 가족과 김치를 담그고 맛있는 음식 챙겨 먹는 것도 사람이 정스럽게 살아가는 따뜻한 일이다. 일 년 가장 중요한 일을 마감한 듯 정말 마음이 가볍다. 담가 놓은 김치는 일 년 동안 우리 가족의 밥상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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