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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Oct 25. 2022

시가 있는 날, 가을이 익어간다

시와 함께 하는 어느 날

"선생님 오늘 시간 있으신가요?" 시 낭송 선생님에게 톡이 왔다. 다름 아닌 얼마 전 한길 문고에서 시 낭송 행사를 하고 행사비가 선생님 통장에 입금되었다고 한다. 참 이런 날이 있다니,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긴다. 우리는 그날 참여했던 선생님 네 명이 팥죽을 먹고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신다.  


찻집은 내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곳이다.  '인사동' 이란 전통 찻집인데 분위기는 그냥 소박하고 아늑하다. 우리는 차를 한잔 마주하고 시에 대한 이야기에 모두가 취해 있다. 나는 아직 시낭송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초보자라서 선생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듣고만 있다. 시 낭송의 세계 이야기를 들으니 몰랐던 많은 걸 알게 된다.


찻집 따끈한 방 안에서 통창으로 보이는 소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낙업들은 바라보고 있다. 가을이 익어가는 느낌이다. 그 모습을  눈으로 담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고요해지며 참 좋다.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 교감이 되는 자리가 편하다. 나는 그저 어쩌다 시가 좋아해서 발을 담그게 된 시낭송의 세계,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무엇을 공부를 하던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낭송가로 살기보다는 시를 좋아하고 즐기고 살고 싶은 마음이다. 시 낭송가로 살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걸 공부해야 하기에 어렵다. 나는 그냥 시가 좋을 뿐이다. 시는 생각의 쉼과 같은 거다. 그래서 나는 좋다.


월요일은 시 낭송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시와 함께 노는 날인 것 같다. 남편 저녁을 차려주고 나는 아파트 앞에 있는 '예스트' 서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날이 추워져 밤에는 따끈한 것을 찾게 된다. 나는 보이차를 준비하고 지난번 천안 친구가 준 김부각을 가지고 서점을 수업하려 간다. 수업을 하는 분들은 여섯 사람 정도라서 오붓하고 좋다. 내 삶에서 나 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다. 마음도, 먹을 것도.



우리는 수업하기 전 차도 마시고 부각도 먹고 다른 선생님이 가지고 온 홍시감도 먹으며 한담을 하며 즐긴다. 시라는 매개체가 있지만 결국 사람은 서로의 좋아하는 목표 하나를 가지고 이처럼 어울려 삶을 즐긴다. 나는 놀거리 즐길거리가 있어 생각할수록 참 다행이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인연이 들이 모여 삶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서점에서 시 낭송 수업을 받고 있다


내가 시 낭송 수업을 받는 선생님은 올해 전국 시 낭송 대회에서 두 번의 대상을 받으셨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대상을 받을 정도가 되면 시를 몸에 습득해서 시가 한 몸이 될 정도가 되어야 시 낭송의 진면목을 부여 주는 거라 말하시며 시를 낭송해 주신다. 그 순간은  내 감정의 물살이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을 모아 가만히 지켜본다.


선생님이 낭송해 주는 시를 듣고 있으면 그 시에 몰입이 되어 시가 말하는 풍경이 그려지면서 마치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만 같다. '회상'은 광주의 5.18에 대한 시다. 낭송하는 시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울컥하고 아파온다. 아직은 젊은 한강이란 작가가 쓴 시인데 어쩜 사람 마음의 아픔을 그리 잘 표현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우리도 한 번씩 낭송을 해 보지만 절대로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완급, 조절과 감정이 잘 표현되어야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선생님 낭송은 예전 영화 변사가 말하듯 슬픔, 아픔을 그리 잘 표현하신다. 다른 시 조병화의 '늘, 혹은' 시는 사람들과 모임 할 때 한 번씩 낭송해 보라 하시며 먼저 한번 낭송해 주신다. 정말 어쩌면 시인들은 그 처럼 사람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지, 감동이다. 


시란 무엇인가? 뭐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정말 가을은 익어가고 시가 있는 밤은 더 깊어 가며 우리 마음을 녹여낸다. 



늘, 혹은 /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따뜻한 격려와 공감해 주시는 브런치 인연이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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