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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Feb 03. 2023

도아 갤러리 쉼터

우리 동네에는 도아 갤러리 쉼터가 있다

나는 30년 동안 줄곧 군산이란 도시 나운동에 살고 있다.  굳이 왜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지  물어보면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살다 보니 익숙해졌고 편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 그대로  살고 있다. 수년 동안 동네골목길을 돌아다니면 오래전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집들은 그대로 변함이 없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게 가을이 오면 골목길 감나무가 담 넘어 열려 있는 곳이 내가 사는 동네다. 오래 보아왔던 아파트의 나무들 조차 친근하다. 일 년 사계절의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고향같이 푸근해진다. 오래 보아왔던 모든 것들이 익숙해서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느린 아날로그 감성이 좋다. 새로운 것은 만나면 언제나 당황하고 긴장을 하게 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색깔로 보여주는 나무들은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다. 느리게 가고 있는 군산의 도심은 쉽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새로 개발하는 곳 빼고는 그대로 인 곳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나운동도 30여 년 전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별로 달라진 곳이 없다. 단독주택 역시 오래전 모습 그대로다.


우리 동네에는  시장 갈 때 볼 수 있는 작은 도아 갤러리가 있다. 누구나 지나가다 들어와 그림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쉬어 갈 수도 있는 곳이다. 나는 그곳을 한동안 지나다니면서 어느 화가가 전시회를 하나 보다 혼자 생각하면서 지나치곤 했었다. 그곳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고래 그림이라는 탁자가 참 멋지다


사람 사는 일은 한 치 앞도 모른 체 살아간다. 내가 매번 궁금하면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곳, 이제는 나도 그곳 러리에서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곳은 자페성장애 1급 32살 청년 작가가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내가 그림을 잘 보는 전문가는 아니어도 그림 색이 너무 밝고 그림 안에 숨어있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는 듯 보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참 평화롭고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그곳과 인연이 되게 된 경유는 지난 늦가을 뜨개방 생님의 권유로 '작가의 서재'라는 전시를 며칠 하면서 갤러리 주인이신  송선생님을 만났다. 도아 갤러리 작가 어머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모와 밝은 목소리, 에너지가 넘치는 품이 넓은 멋진 분이시다. 아마도 어머니 기운이 아드님에게 전해졌을 것 같다. 시절 인연은 어느 날 의도치 않게 내 삶과 연결이 된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것은 밤이면 아드님에게 내 책을 읽어 준다는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 글이 특별한 멋진 문장이 있는 글도 아니고 줄을 칠 만한 근사한 글도 아니다. 그냥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람은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연결 감정선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마음 안에 누군가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도아 7.8 갤러리란 도아는 개구쟁이 낙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구절은 노동이 아들의 장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팸플릿에서 읽었다. 7.8이란 작가의 생일이  7월 8일이라서 붙인 이름이고. 이제야 도아 7.8 갤러리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드님은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2회에 걸쳐 입선한 작가님, 얼마나 많은 세월을 애쓰고 살아왔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 어머니의 수고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온 삶이 다 담겨 있으리라 믿어진다.


3.1절이 곧 돌아온다. 군산의 만세 운동의 발상지 구암교회에서 행사가 있다. 우리 시 낭송회에서는 그날 시극을 한다고 연습 중이다. 나는 두 사람이 하는 합시를 하게 되어있다. 합시는 혼자 낭송하는 것보다는 훨씬 힘이 들었다. 서로 맞추어 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시극은 해야 하고,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나도 참 궁금하다.


그런데 연습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도아 갤러리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니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그래서 마음 놓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도아갤러리에서 만나 연습을 하고 있다. 차 마시고 이야기하고 시 낭송하고 쉬면서 이런 호사가 없다.


시낭송 초보인 나는  오래 낭송공부를 하신 혜련 선생님에게  독 과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시 낭송은 그냥 외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리 어려운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자칫하면  힘들 수 있지만  난 마음을 내려놓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아무 때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그곳에서 차 마시며 쉴 수 있는 곳이다.

나는 특혜를 얻었다. 도아 갤러리라는 멋진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다니, 나도 놀랍다.


사람은 살면서  가끔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고, 자기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되짚어 보게 된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더 없는 축복이다. 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살게 하는 기운을 보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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