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밥을 쪄서 사랑을 전한다

찰밥은 사랑을 전하는 일이다

by 이숙자


아침은 간단히 깨죽을 끓여 먹고 어제 담가 불려놓은 찹쌀로 찰밥을 찐다. 11월을 보내며 갑자기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어디 숨어있다가 마주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이 맑은 햇살이 비추듯 기분이 좋아지는 분과 만남이다. 특히나 요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멀어 누구에게 쉽사리 정을 주지 않으려는 경향들이 있는데 세월을 많이 살아온 나를 좋아해 주는 도아 선생님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찰밥을 찌는 이유는 몇 가지다. 나는 찰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우선 좋은 사람과 물길을 틀 때 해주기도 하고 마음이 시린 사람, 무언가 속이 허전한 사람, 사랑이 그리운 사람에게 내 나름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으로 찰밥을 쪄서 나눔을 한다. 며칠 전 '작가의 서재 란 이름으로 전시하도록 배려해 주신 뜨개방 선생님들에게도 찰밥을 해서 건네주었다.


가끔씩 내 찰밥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타고 건너간다.


누군가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찰밥을 쪄서 위로해 주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표현이다. 밥이란 어쩌면 생명을 이어주는 일이다. 요즈음 밥 못 먹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은 찰밥을 찐다는 개념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다. 팥을 삶고 찹쌀은 5시간 이상 담가 고두밥을 찐 다음 알맞게 삶아 놓은 팥을 섞어 소금 간을 한 다음 한 김을 내서 뜸을 들이는 일이다. 해 보지 않으면 번 거로 울 수 있다.


오늘은 엊그제 만난 갤러리 도아 선생님에게 찰밥을 전하고 싶어 내가 찰밥을 찌면서 톡을 보내고 이게 무례한 일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혹여라도 번거롭고 그냥 받아 가기 민망해서 무어라도 건네 주려 한다면 어쩌나,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정말 이제는 작은 거라도 나누고 살고 싶다. 세상을 요만큼 많이 살았으면 작은 거라도 주고 살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며칠 전 전시회가 끝나는 날이다. 몇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도아 선생님은 집 냉장고에서 간식을 다 들고 나오셨다. 선물 받은 수제 쿠키, 김부각 차 마시며 조금 먹고 남은 건 결국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않아 집으로 가져와 남편이 간식으로 다 드셨다. 또 콩나물을 박스로 선물 받은 걸 매장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세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결국은 나도 다 먹지 못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한 봉지 주었다. 콩나물은 손자가 좋아한다.


무얼 아낌없이 나누려 하는 도아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감동을 받았다. 아직은 나이 든 분이 아닌 젊은 분이 이토록 나눔을 하는 걸까? 아마도 나눔에 익숙한 분 같다. 천성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성격을 가지신 분인 듯하다. 하여튼 나눈다는 건 행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전시회가 끝나고 며칠을 그날 일들이 머리에 떠나질 않아 글을 써야지 마음으로 새기고 있다 가 오늘에야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그냥 말 수가 없었다. 고마운 마음에 무얼 좀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찰 밥을 쪘다. 그게 어른의 몫이 아닐까. 아침에 찐 찰밥을 건네려 도아 선생님에게 톡을 보냈는데 답이 왔다. 사실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으셔 사양하는 편인데 사랑이 담긴 찰밥은 주시면 받겠다고 하면서 꽃다발을 한 아를 안고 우리 아파트 마당까지 오셨다. 사실 그냥 받아 가시는 게 나는 좋은데, 아마도 처음이라 그러실 것이다. 꽃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포장지도 마음에 들었다.



꽃다발을 받아 거실에 꽂아 놓으니 거실이 환하다. 정말 다음에는 빈손으로 받아가시면 좋겠다. 나는 세월을 많이 견뎌낸 옛날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조심한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주기는 싫다.


인연이란 어느 날 우연히 나도 몰래 돌다리를 건너뛰듯 찾아왔다.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인생이란 강을 단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람도 그렇다.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밟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가야 한다.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이기주의 인문학 산책 중에서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나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누군가 갑자기 연 커튼 너머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오늘도 내게는 찬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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