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며칠 남지 않았다. 달력의 숫자가 자꾸만 줄어들고 여기저기에서 이해를 마감하는 모임들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발이 묶여 사람들과 만남이 자유롭지 못했었다. 지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만남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멈추었던 일상을 찾고 여행도 가고 모여서 밥도 먹고 정담들을 나눈다. 코로나라는 엄청난 회오리를 경험하면서 소박한 삶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화요일이면 만나는 시 낭송 군산 예술원 송년회가 어제 있었다. 얼마 전 계획은 회장님의 시골집에서 모임을 하려 했지만 며칠 째 군산에 많은 눈이 왔다. 행여 회원들이 이동하기 불편할까 보아 회장님은 지인의 작은 카페에서 모인 다는 카톡이 단체 창에 떴다. 회원 중 누구라도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 때문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눈이 많이 오면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밖에 외출은 조심스럽다. 행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고생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눈이 많이 오면 아름다운 정경을 집안에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눈 구경을 해야 하는 현실에 나이 듦을 실감한다. 젊어서는 넘어지는 것도 두렵지 않고 눈 속에서 마음껏 낭만을 즐겼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지나간 날들이다.
세월의 흐름과 나이 듦은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찾아온다. 마음속 이상과 현실은 많은 거리가 있다. 그걸 인정하고 사는 것이 세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 듦이란 많은 것을 절제하고 자연의 흐름을 잘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예전과 다른 쓸쓸함도 외로움도 다 견뎌야 하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란 말도 어느 시인이 한 말이다.
차를 타려고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오니 차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두껍다. 차가 마치 눈으로 만든 차 같다. 차 위에 눈을 쓸어 내고 남편은 조심조심 눈길을 걷듯 운전을 한다. 동네에 같이 살고 있는 선생님들 두 분과 함께 송년회 모임 장소로 찾아갔다. 회장님은 벌써 도착해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차에서 내리고 계셨다. 카페는 조그맣고 아늑했다.
회원들 오기 전에 음식을 차려 놓았다. 차려놓은 음식은 무슨 잔치 집 같다. 찰밥과 호박죽, 각종 밑반찬 맛깔난 김장 김치와 수육, 싱싱한 야채 된장국과 김치찜 까지, 잔치에 빠지지 않는 잡채, 떡, 과일, 강정 정말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세상에 언제 잠을 주무시고 이 토록 많은 음식을 준비해 오셨는지, 떡이나 과일 찰밥은 다른 회원들이 준비해 오셨지만 그 밖에 다른 음식은 회장님이 혼자 준비를 해 오셨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사람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쉽지 않은 많은 품을 들이는 일이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많다.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자꾸 사라지는 때인데, 이런 일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회장님은 매우 바쁜 분이다. 지역 봉사단체에서 많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바쁜 상황에 언제 이처럼 밑반찬은 다 만들어 놓았는지.
예전과 달리 지금은 우리들 생활 속에서 가끔은 정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회장님의 따뜻하고 너른 품에 마음이 울컥해 온다. 감동이란 이런 때 쓰는 말 같다. 하나의 모임을 잘 이끌어 가려면 리더가 많은 역할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처럼 힘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항상 품이 넓고 마음이 따뜻한 회장님을 보면서 나는 다시 배운다. 이건 사업하는 일도 아닌데, 시를 좋아해서 같이 한 곳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이다.
'한국 시 낭송 문화 군산 예술원'에 소속된 인원은 23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시극과 시 낭송 연습을 한다. 그럴 때마다 차를 마실 때, 종이컵을 사용하지 말자는 제안에 회장님은 회원들에게 스텐 개인 컵을 선물하셨다. 누구는 수세미를 손으로 떠서 선물하는 분도 계시고 또는 추운 겨울 발이 따뜻하도록 양말을 선물하는 회원. 이 모임은 어찌 그리 마음들이 따뜻 한지 만날 때마다 간식을 챙겨 오는 분도 많아 먹을 것이 언제나 푸짐하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 토록 정을 나누고 살게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찻 자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차를 나누는 일이다. 한쪽 테이블에 찻자리를 해 놓고 따뜻한 차 한잔씩 권하며 마음을 덥혀 주는 일을 할 뿐이다. 이 모임은 회장님의 항상 따뜻함과 너른 품으로 사람을 안아주는 넉넉함이 사람을 모이게 하는 기운이 있는 듯하다. 언제나 분위기는 훈훈하다. 밥을 먹고 덕답을 하고 차를 마신다.
내년 도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회의를 시작한다.
회장님은 우리 시 낭송 회원들의 해야 할 일,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이 지역에서 시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봉사를 할지, 모두가 의견을 나누며 더 발전할 수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뒤늦게 시 낭송 공부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시어들을 나누며 사랑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찰나에 불과하다. 인생에도 공식이 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내 시간을 주로 어디에 쓰는지 이러한 많은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좋은 만남은 반복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살아간다면 내 삶이 좀 더 유연 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시를 낭송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안아 주고 싶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행복하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뒤늦게 시 낭송을 하면서 만난 인연이 감사하다. 늦은 나이에 글을 만나고 시를 만난 건 얼마나 따뜻한 나의 저녁노을 인가. 신은 인간에게 내일을 약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한 번뿐인 내 삶을 소중히 살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