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마음에 귀 기울이다
병상에서 받는 작은 선물, '좋아졌네요'
퇴원하는 날 아침 6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온수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식이다. 또한 아침에 골수검사가 예정되어 있다. 검사를 마친 이후 한 동안 샤워를 할 수 없다. 샤워를 하니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편안했다. 나는 몸과 마음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샤워를 습관처럼 한다. 간호사는 이른 아침에 혈압과 맥박, 혈당을 체크했다. 혈당은 다소 높았지만, 간호사는 좋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좋다'라는 말에 마음의 편안을 느끼고 긍정 에너지를 받았다. 병상의 생활이 힘들기는 한 모양이다. 병원 밥이 생각보다 맛있다. 밥을 제외한 나머지 국과 반찬을 다 먹었다. 며칠 전부터 밥의 양을 반으로 줄였다.
골수 검사와 채혈, 퇴원을 위한 마지막 의식
입원 과정에서 가장 받기 싫은 검사는 골수 검사이다. 골수는 왠지 척추가 품고 있는 신비한 물질처럼 느껴졌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신비롭게 두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골수 검사용 주사 바늘은 일반 주사 바늘보다 길고 굵었다. 외관 자체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골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병원은 골수 검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나 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처음에는 병실 내 침대 위에서 한다고 했다가 병동 내의 치료실에서 한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간호사가 내 침상 위에서 진행한다고 최종 안내를 했다. 골수 검사를 다른 환자와 있는 병실에서 진행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검사 과정에서 공기에 의한 감염이 가장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질문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나 또 질문을 받으면 불편해할 것이다.
의사는 주사 바늘을 꽂을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특정 위치의 주변을 계속 눌러보며 탐색하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로봇 시술을 상상했다. 나는 검사대 위에 엎드려 있다. 거대한 로봇 팔이 내 몸에 빛을 쏘며 허리와 엉덩이 쪽을 스캔했다. 이어서 다른 로봇 팔이 스캔한 곳에서 주사 위치를 파악하고 채취에 필요한 만큼의 압력으로 주사를 하고 이내 채취를 마쳤다.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의사는 부분마취를 위해 주사를 놓았다. 잠시 후 긴 바늘이 꽂히는 느낌이 왔다. 어떻게 주사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바늘이 들어가는 부위를 계속 마사지하듯이 만졌고 주사 바늘을 더 깊이 누르는 것 같았다. 먼저 골수 피를 채취했다. 이어서 골수 조직을 채취했는데, 옆에 있던 의사와 채취된 내용이 검사를 위해 적합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다른 조직도 채취했으면 좋겠다는 대화가 들렸다. 의사는 추가로 두 번을 더 주사했다. 총 네 번을 주사했다. 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최악이다. 여하튼 긴장된 순간이 모두 지나고 의사와 감사 인사를 나눴다.
간호사는 검사 부위에 지혈과 감염 방지를 위해 붕대를 댔다. 이어서 모래주머니를 허리에 대고 30분 누워있도록 했다. 침상에 있는 동안 무언가 중차대한 의식을 마무리지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몸의 긴장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간호사가 주사 위치를 보고 지혈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채혈을 하고, 퇴원 준비를 했다. 나의 담당 간호사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퇴원을 하며 담당 의사와 병동에 있는 간호사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병상에서 일상으로
긴장에서 평안으로
보험처리를 위해 네 가지 서류를 요청했다. 입원 사실 증명서, 진단서, 진료비 계산서 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 정산을 마치고 나니 여행지의 터미널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입원과 퇴원 수속을 하는 곳은 표를 끊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커피를 손에 들고 이동하는 사람, 넓은 로비에 설치된 TV를 유심히 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과 별 차이가 없었다. 잠시 마음이 떠돌았다. 나는 여행지를 다녀온 감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퇴원하기 전에 짝과 두 곳을 들르기로 했다. 한 곳은 병동의 지하에 있는 빵집이다. 좋아하는 빵을 주워 담았다. 갓 구워낸 빵에서 구수한 냄새가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듯 다가왔다. 여행을 할 때는 현지의 맛집들을 미리 파악해 둔다.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들을 순례하듯이 찾아간다. 오늘 첫 순례지는 빵집이다. 이어서 동네에서 회냉면과 찐만두를 점심으로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 커피 집에 들러 산미가 물씬 나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웃음 짓게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예가체프 원두를 갈았다. 사각사각하며 원두 가는 소리가 났다. 물을 끓이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렸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다. 그래 내가 마시던 아침의 커피는 바로 이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