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방황하다
너무 생소하게 느껴지는 암센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묻다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
암센터 대기실은 이미 많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입구에서 방문 등록을 했다. 코로나 19 확진자의 동선에 있던 곳들이 A 4 용지에 정리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안내 요원들은 해당 동선을 방문했는지를 물었다, 그다음 본인이 기침, 고온, 오한 등이 있는지, 최근 외국에 다녀온 적이 없는지를 물었다. 진료 접수를 확인하고 대기했다.
나는 순간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암센터 대기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 있고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치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있는 사람들처럼 낙담의 에너지를 느꼈다. 그들은 대기실 앞에 있는 진료 대기자의 현황을 알려주는 정보 안내판을 물끄러미 보거나 대형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대개 2~3명이 함께 방문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 무리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지 궁금했다. 밝은 표정은 어울리지 않고, 힘없고 좌절한 듯한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암센터라는 장소에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했다. 큰 염려가 없는 상태라고 자평을 하다 보니, 함께 있기가 더욱 불편했다.
두리번거려 보니, 키와 몸무게, 비만도를 측정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병원 회원증을 바코드 리더기에 대면, 자동으로 측정 장치의 결과가 내 회원번호의 의료 자료에 입력된다. 나는 서둘러 필요한 측정을 마쳤다. 그러나 나의 진료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한다. 내 주의가 주변 사람들에게 옮겨지면서 마음이 떠돌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인기 많은 연극 공연을 보러 온 것처럼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쩌면 이 물리적 공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있다. 따듯해 보였다. 어느 엄마와 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정보를 교환하는 듯했다. 딸은 연신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혼자 온 사람도 있다. 그는 자기의 관심 사항에 집중하고 있다. 분명히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입원하는 환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이방인처럼 그곳에 한 동안 머물렀다. 이어서 내 상담 차례가 되었다. 진료 의사는 40대 초의 연령대로 보였다. 그는 보호자와 방문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혼자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힐끔힐끔 보면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환부를 알고 계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환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 지금까지의 검사 결과로 볼 때, 구체적인 병명이 나왔나요?"
"이비인후과에서 말씀 들으셨습니까?"
"네, 소포성 림프종으로 들었습니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 CT 촬영한 사진을 띄우고 환부를 보여주었다. 환부의 이미지를 360도로 전환시키며 다차원에서 환부의 위치와 크기를 다른 신체 기관이나 조직과 비교하며 설명했다. 그동안 눈으로만 보던 것을 내부를 들여다보니 쉽게 이해되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림프종은 종류가 100가지 이상입니다. 구체적으로 알려면 조직검사를 추가로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림프종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해야 합니다. 조직검사와 다른 검사가 필요한데 빠르면 3~4일 소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이 소요됩니다."
"입원하지 않고 통원하면서 검사도 가능한가요?"
나는 사실 코로나 19가 아직 유행하는 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동안 병원 경영자와 핵심 리더들을 코칭하기 위해 다른 대형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시설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병원을 나오기 전에는 꼭 손을 씻었다. 병원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점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통원도 가능하지만, 각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검사별로 예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 입원하시고 검사에 필요한 시간을 내과에서 확보하여 검사를 받는 것이 환자에게 여러 면에서 편리합니다. 많은 분들이 입원해서 진단 검사를 받습니다. 어디에 사시죠?"
나는 거주지를 알려주며 어떤 검사를 받는지를 물었다. 그는 몇 가지 검사를 말했지만 생소하여 기억하지도 못한다. 나는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김에 제대로 원인을 알고 싶다. 그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 전신을 훑어보는 기회로 갖자고 생각했다. 그래 입원해서 차분히 필요한 검사를 받아 보자.
"지금 환부는 다시 조직검사를 해야 합니다. 첫 조직검사에서 세침으로 환부의 중요한 위치를 잘 잡아 림프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 절개하고 꺼내서 조직을 검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술은 조직검사에 필요한 만큼만 진행할 것입니다."
의사는 가장 빠른 입원 날짜를 나에게 말하면서 입원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네 좋습니다. 그때 입원을 하겠습니다."
상담실을 나와 원무과에서 입원을 예약했다. 상담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 특례 및 재난적 의료비 지원 신청'도 했다. 진료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입원해서 받게 될 구체적인 검사를 상세하게 더 물어보았어야 했다. 아니면, 지금과 같은 사례의 경우 통상 어떤 검사를 받는다고 나에게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담 당시에는 미처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입원하면서 이 점에 대해 궁금증과 아쉬움이 컸다.
나는 암환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
나는 병원을 나오면서 림프종을 치료받는 암환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 입원을 하고, 각종 검사를 통해 더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겠지만 말이다. 정도의 차이와 관계없이 암환자라는 사실에 알게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을 가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도대체 왜 내가 지금의 상태에 오도록 건강에 무지했는지를 자책했다. 나는 암환자라는 명칭보다 그냥 림프종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건강 상태를 의학적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를 통해 완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비록 자평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