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날들의 기록
사경을 헤매다 3일 만에 중환자실을 나왔다.
'일반 병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은 찰나였다. 전쟁터만 바뀌었을 뿐, 내 몸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나의 기록은 2월 24일부터 27일 사이가 텅 비어 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록할 힘조차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볼펜을 쥘 악력조차 사치였던 날들. 배를 관통하는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는 잠시 빠져나가는 척하다 다시 거세게 나를 덮쳤다. 그 며칠은 그저 앓는 소리와 식은땀, 그리고 진통제의 몽롱함으로 채워진 백지(白紙)의 시간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문장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힘든 하루다...
그리고 마침내, 멈춰있던 내 몸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건 물 한 잔 때문이었다.
오전 9시. 금식이 풀리고 허락된 첫 물 한 컵.
며칠 만에 입술을 적시는 액체는 물이 아니라 생명수였다. 메마른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서늘하고도 축축한 감각. 꼬여있던 장기들이 비로소 물기를 머금고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얼마 후였다. 배 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진동이 느껴지더니, 밑으로 묵직한 공기가 빠져나갔다.
"뽀록, 뽀록~~"
방귀였다. 평소라면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거나, 냄새를 걱정하며 창문을 열었을 그 소리.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9시간 동안 난도질당하고 이어 붙여진 위장과 십이지장, 그리고 췌장의 남은 부분들이, "주인님,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요. 다시 일하고 있어요"**라고 보내는 무전 신호 같았다. 오전 10시 31분.
다시 한번 "뽀록" 하고 2차 신호가 왔다. 확실하다. 내 몸은 다시 기능을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더럽거나 우스운 소리일지 몰라도, 암 병동에서 방귀는 축포와도 같다. 장폐색 없이 장기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 이제 미음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허락. 기록되지 못한 4일간의 지옥 같은 통증 끝에,
나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아니 '먹고 싸는' 생명체로써의 기능을 되찾았다.
여전히 배는 찢어질 듯 아프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이 고통은 죽어가는 고통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뽀록' 그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오늘따라 눈물겹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