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었지만 매일 걸었다
몸 안의 가스가 빠져나가고, 타들어 가던 목구멍으로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넘어갔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는 생물'임을 자각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숨만 쉬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걸으셔야 합니다. 아파도 걸어야 장이 유착되지 않아요. 그래야 빨리 집에 가죠."
집. 그 한 글자가 뇌관을 건드렸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수술 부위를 단단히 조여주는 복대(腹帶)를 찼다. '찍-' 하고 벨크로가 붙는 소리가 병실의 적막을 찢었다. 복대는 마치 흩어지려는 내 몸을 억지로 붙들어 매는 동아줄 같았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허리를 펴는 것조차 중력이 나를 짓누르는 고문처럼 느껴졌다.
침대 밑으로 다리를 내렸다. 며칠간 땅을 밟지 않은 발바닥에 닿는 병원 바닥의 감촉이 낯설고 차가웠다.
내 유일한 파트너는 차가운 은색 링거 폴대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 주머니들이 링거 줄을 타고 내 혈관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폴대를 생명줄처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배어난 식은땀 때문에 스테인리스 봉이 미끄덩거렸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엉덩이를 뗐다. 뱃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단말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눈앞이 핑 돌았다. 다시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냥 누워 있으면 편할 텐데. 진통제 버튼을 누르고 잠들면 고통은 잊힐 텐데. 하지만 나는 일어섰다. 살려고.
살아서, 저 문을 열고 나가고 싶어서.
병동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 같았다. 평소라면 1분도 걸리지 않을 저 휴게실까지의 거리가, 지금은 마라톤 풀코스보다 멀어 보였다. 한 발을 떼었다. 발을 끄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쓱, 쓱.
걸음이라기보단 차라리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링거 바퀴가 굴러가는 드르륵 소리가 내 심장 박동 소리와 엇박자를 이루며 따라왔다. 지나가는 간호사들의 시선, 다른 환자들의 링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발끝과, 내 배의 통증, 그리고 '걸어야 한다'는 뇌의 명령만이 존재했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환자복을 적셨다.
링거 폴대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폴대에 내 체중의 절반을 싣고, 나머지 절반은 오기로 버텼다. 다리가 후들거려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창피함 따위는 사치였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복도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그 빛 한 조각을 밟기 위해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조차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깟 걷기가 뭐라고.
평생 아무 생각 없이 해왔던 이 행위가, 죽음의 문턱을 한번 밟고 돌아오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오늘, 살기 위해 걷는다.
이 차가운 복도 끝에, 분명 다시 뜨거워질 내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췌장암 난 극복하고 이겨낸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