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이 고향이 된 너에게
2010년의 공기를 기억한다. 조금은 차갑고, 낯설었던 그해의 바람. 너는 저 멀리 독일에서 바다를 건너 이 낯선 반도에 도착했다. 수많은 서류와 절차를 거쳐 내 앞에 섰을 때, 너는 막 포장을 뜯은 선물처럼 눈부셨고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서로가 서로의 15년을 책임질 운명이 될 줄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로부터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사람의 인연도 10년을 넘기기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기계와의 인연이 이토록 질기고 깊을 수 있을까. 너는 나의 40대를, 50대를,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날들을 묵묵히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다.
우리가 함께 밟지 않은 땅이 있었던가. 지도를 펼쳐보면 한반도의 혈관 같은 도로 곳곳에 우리의 타이어 자국이 보이지 않는 잉크로 새겨져 있을 것만 같다. 동해의 푸르스름한 새벽안개를 가를 때도, 남해의 굽이진 해안 도로를 달릴 때도 너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내가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너는 심장박동 같은 진동으로 대답했다. "갈 수 있어요. 어디든."
신기한 일이다. 나는 가끔 감기에 걸려 눕기도 하고, 마음이 고장 나 멈춰 서기도 했는데 너는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 흔한 잔병치레 한번 없이, 시동 버튼을 누르면 언제나 씩씩하고 건조한 디젤 특유의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규칙적인 진동이 때로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든든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는 그 좁은 운전석 안에서 나는 너의 단단함에 기대어 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주인 잘못 만나 험한 길도 많이 다녔다. 흙먼지 뒤집어쓴 채 며칠을 방치되기도 했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너를 세워두고 일만 하러 다닌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너는 한결같았다. 낯선 나라에 수입된 이방인(異邦人)이었던 너는, 이제 나와 함께 늙어가는 가장 친숙한 가족이 되었다.
문득 주차장에 세워진 너를 본다. 최신형 모델들의 화려한 눈매 사이에서, 조금은 투박해진 너의 실루엣이 보인다. 하지만 초라하지 않다. 그 낡음은 낡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견뎌온 세월의 훈장(勳章)이기에.
나의 2010년, 나의 젊은 날, 나의 모든 길. 아프지 않고 곁을 지켜주어서, 그저 달리는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 정말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