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안성기 별세
2026년 1월 5일 오전 9시, 서울의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유독 살갗을 파고들며 시리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무려 170여 편의 영화 속에서 때로는 고뇌하는 청춘으로, 때로는 든든한 가장으로, 그리고 우리 모두의 따뜻한 이웃으로 반세기를 함께 호흡해 온 국민배우 안성기 님께서 먼 여행을 떠나셨다는 비보가 이 차가운 공기에 무게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식사 도중 예고 없이 찾아온 심정지, 그리고 이어진 위중한 상태 끝에 닿은 영원한 이별이라는 소식은, 죽음이라는 것이 거창한 예고와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 곁에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상기시킵니다. 스크린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분의 환한 미소가 이제는 필름 속에 갇힌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한 상실감이 밀려옵니다.
우리는 그를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이자 시대를 위로하는 어른으로 가슴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깊게 파인 주름마저 연기의 일부로 승화시키며 삶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표현해 온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장엄한 대서사시였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태도는,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를 소리 없이 웅변하곤 했습니다. 밥 한 끼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서둘러 데려가신 야속한 하늘을 원망하다가도, 고통 없는 곳에서 비로소 편안한 휴식을 취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따스한 온기가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스크린 밖의 현실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외투처럼 존재할 것입니다. 배우 안성기라는 이름 석 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각인되어 영원히 상영될 것임을 믿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대본도, 카메라의 붉은 불빛도 없이 오직 자유롭고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이 땅에 남겨진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존경했는지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당신의 따뜻했던 미소를 닮은 눈송이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의 영원한 안성기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