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에 들어가면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곳이 바로 서쪽 능선의 와불이다. 대웅전에서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자연 암반 위에 조각된 거대한 불상 앞에 당도하게 된다. 흔히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 같다 하여 부부 와불로 불리고 있지만, 암반에 깊게 새겨진 두 조각상을 살펴보면, 가부좌를 튼 길이 12m의 불좌상과 길이 10m의 입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와불은 도선국사가 하루 낮과 밤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자 했으나 밤샘 일에 지친 동자승이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결국 완성을 못 하고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하며, 이 와불이 일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흥미진진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 불좌상의 손동작(수인)이 지권인처럼 보인다 하여 불상의 이름을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법신), 혹은 부처님의 말씀(진리)을 상징하는 비로자나불로, 왼쪽의 입상을 석가모니불이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이 불좌상으로부터 50m 아래 남쪽에 놓인 북두칠성 바위와 짝을 이뤄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자, 그러면 우견편단의 복장에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12m의 거대 와불의 이름은 무엇일까? (아울러 옆에 서있는 자세의 석인상의 이름은?)
(1) 미륵불, (2) 비로자나불, (3) 치성광여래, (4) 석가모니불
<그림 1> 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에서 서쪽 능선의 암반에 새긴 거대 좌불과 입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불과 항상 그의 옆에 서서 설법을 듣고 모조리 외운 다문제일 아난입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천불천탑은 2차원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 대자연에 조성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입니다. 관경16관변상도의 주제는 '참회와 염불, 서방정토 극락왕생'이며, 조성시기는 고려 천태종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14세기초였습니다.
<그림 2> (왼쪽) 천불천탑 공간은 (오른쪽)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구성처럼 네 개의 정토(불회, 상배관, 중배관, 하배관)로 구성되어 있다.
서복사장 2차원 <관경16관변상도>의 화면 구성과 똑같이, 천불천탑은 크게 네 개의 공간(불회, 상배관, 중배관, 하배관)으로 구획된다. 여기서 <관경16관변상도>의 석가모니 불회 영역은 → (천불천탑 공간에서) 거북바위 칠층석탑-석불군 (바)-칠성바위-부부와불-시위불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관무량수경>에서 석가모니 불회가 열리는 영산정토를 표현한 것이다.
부부 와불은 석가모니 부처와 아난이다
넓은 불회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물은 부부 와불로 불리는 거대 불좌상과 입상이다. 이 두 분의 이름을 서복사 소장 <관경16관변상도>의 도상을 이용해서 밝히려면, 불회 장면에서 제자, 보살의 이름과 배치 구도를알아야 한다.
<그림 3>에 보인 것처럼, 서복사 소장 <관경16관변상도>에서 에서 석가모니 부처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두 명의 제자가 눈에 띈다. 이 둘은 수행을 가장 잘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로 불린 가섭과 부처의 설법을 빠짐없이 듣고 모두 외워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린 아난이다. 두 제자는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후에 비구 500명이 모인 제1차 결집에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승의 죽음 후에 자칫흩어지거나 잘못 전해져 제멋대로 해석될 수도 있었던 부처의 말씀과 승단의 계율을 제1차 결집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기록해 둠으로써 이후 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불교에서 두 분의 위상은 기독교의 베드로와 사도바울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그림 3> (왼쪽부터) 서복사 소장 <관경변상도>의 불회 장면에서 석가모니 부처와 두 제자(가섭, 아난), 천불천탑의 거대 와불과 입상, 석굴암의 아난존자 부조
불화에서는 부처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 방향이 정해지지만 관람자 시선 하고는 반대라서 헷갈릴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관람자 시선으로 오른쪽이면 향우(向右), 왼쪽이면 향좌(向左)라 정하고 방향을 설명하였다. 1불+2제자+2보살로 이루어진 오존상(五尊像) 양식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향우에는 연꽃을 든 관세음보살과 늙은 가섭을 두며, 향좌에는 정병을 든 미륵보살과 나이 어린 아난을 둔다. 그런데 서복사장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장면에서는 석가모니불의 향우에 관세음보살과 아난이, 향좌에 미륵보살과 가섭이 서 있다. 즉 10대 제자 가운데 맏형 격인 늙은 가섭과 나이 어린 아난의 위치를 바꿔 그린 것이 서복사본의 특징이다.
그러면 서복사본의 불회 도상으로 천불천탑 공간에서 거대 와불의 명호(이름)을 밝혀보자.
서복사본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우견편단(오른쪽 어깨를 드러냄)으로 가사를 걸치고 손동작은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설법인(說法印)의 자세를 취한 채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이 모습 그대로 서쪽 능선의 너럭바위에 조각한 것이 길이 12m의 거대 와불이다. 얼굴 모양, 우견편단의 가사, 결가부좌, 설법인 자세를 비롯한 전체적인 모양새가 서복사본의 석가모니 부처와 거의 똑같다.
<그림 4> 부부 와불은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 부처와 그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아난을 묘사한 것이다.
다음에는 거대 와불(석가모니불좌상)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입상의 명호를 밝혀보자. 서 있는 자세이기 때문에 일단 부처상은 아니다.
입상은 불좌상의 향우에 있기에, 서복사본에 의하면 입상의 명호는 관세음보살 아니면 아난이다. 그런데 입상의 복장을 잘 살펴보면 보살의 복장이 아니라 비구의 복장이므로 아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석굴암 본존불 주위에 부조로 새겨진 아난존자 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굴암의 아난존자는 가사를 통견으로 입었다. 왼팔로 살짝 감아올린 가사는 길이방향으로 늘어져 있고 오른팔 아래 가사는 대각선 방향으로 주름이 잡혀 있어 입상에서 느껴질 수 있는 뻣뻣함과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모습 거의 그대로 조각한 것이 길이 10m의 입상이다. 앳된 얼굴, 선한 눈매, 약간 웃음기를 머금은 듯한 입술, 가사 왼쪽과 오른쪽의 주름 방향은 석굴암의 아난존자와 완전 판박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천불천탑 입상의 왼팔은 가사 밖으로 노출됐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천불천탑의 불회 공간에 있는 입상의 명호는 아난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