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어 참견러 Jul 13. 2022

망태 할아범

One of my  Neighbors

  아주 오래되어 낡고 색바랜 기억 속에 망태 할아버지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할아버지가 아닌 그저 지저분해 보이는 옷(작업복)을 입고 다닌 중년의 아저씨다. 그분은 망태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돈이 될 만한 것을 집게로 주우면서 다녔다. 망태는 커다란 소쿠리처럼 생겼는데, 어깨에 짊어질 수 있도록 손잡이도 있는 나름의 이동용 짐수레다. 어린 소녀의 눈에 다소 무섭게 보였던 그분을 내 형제들은 '망태 아저찌'라고 부르곤 했다. 완전히 잊혔어야 할 만큼 먼 기억 끝에 있던 그분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달 전, 모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내 벤치 옆 자리에서 망태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주 지쳐 보이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불쑥 음료수라도 드리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자판기가 없었다. 그때 그는 주머니에서 두유 하나를 꺼내더니 마실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었다. '아, 마실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고, 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때 내 시선이 그의 신발에 닿았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훨씬 커서 금방이라도 벗겨질듯한 낧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전철이 도착했고 난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앉았다. 그런데, 그분은 두 손에 쥐고 있던 폐지와 플라스틱 통을 내려놓고는 그 위에 걸터앉는 것이었다. 마침내 옆자리가 비어 있어 손짓으로 내 옆에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거무스르하고 지친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내 자리로 건너왔고 자리에 앉자마자 마스크를 썼다. 나와 그 낯선 남자의 이상한 손짓 대화를 보았는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의 분위기 때문인마스크 때문인지 우린 둘 다 아마 말이 없었다. 어디에 사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도 않은 채... 다시 그의 신발이 내 눈에 띄었다. 다만 얼마라도 드리고 싶어 가방을 뒤져보니 지갑도 없는 상태였다. 뭐 먹을 것이 없는지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리게 되었다.


집에 오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전화번호라도 하나 받아 둘걸...' 나의 뒤늦은 판단력과 실행력이 지금까지도 후회스럽다. 갑자기 망태 할아버지들과의 추억이 줄줄이 사탕처럼 떠오른다. 신혼 시절, 성남 태평동 나의 이웃으로 살던 분의 집을 남편과 찾아가 작은 돈이지만 전해드렸다. 슈퍼 아주머니가 그 돈으로 술을 사 마신다고 고자질을 하곤 했지만, 그 부부의 수줍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용인에서는 10년 간 교회 주변을 다니시던 분에게 폐지를 모아 드렸다. 그분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폐지를 줍고 계신다. 20년 전, 경주에 살던 시절에도 이러한 망태 아저씨를 만났고, 날이 춥거나 바람 부는 날이면 생각이 나곤 했다. 결국엔 교회 식구들이 힘을 모아 조립식 컨테이너 집을 지어드렸다. 교회에 나와 예배도 참석하고 함께 식사도 하셨지만, 알코올 중독 때문인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분의 장례식을 치루기도 하였다. 친척도 가족도 없는 그분의 장례식을 치른 그날, 내 어린 아들은 갑작스러운 망태 아저씨의 죽음에 놀랐는지, 차에 타면서 자신의 신발을 밖에 벗고 탄 바람에 다시 장례식 주차장을 찾아가야 했다.


 지금  내 아들의 기억 속 그 망태 아저씨 남아 있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기억 때문인지 도로에서 그러한 분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차에서 내려 인사라도 하고 싶어 진다. 남편은 그러한 분들을 위해 현금을 차에 비치해 두자고 한 적도 있지만, 아직 실천하지는 못했다. 이런 게 부창부수인가? 아무튼 그렇게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망태 할아범은 도깨비와 같은 존재가 아닌, 그저 나의 이웃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쌍둥이 북 출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